번역과 나 42

[번역 이야기] 21. 글 잘 쓰는 번역가가 되려면 - 블로그 포스팅을 위한 조언 (혹은 다짐) ①

번역을 잘하려면 삼박자가 고루 갖춰져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외국어 실력이고, 다른 하나는 배경 지식,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바로 한국어 실력입니다. 흔히들 외국어 실력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세 요소가 1:1:1의 비율로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중에서 한국어 실력은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요? 한국어 문법을 공부하고, 좋은 문장 쓰는 법은 연습하고, 한국어로 쓰인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것이 그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많은 번역가들은 '자기 글을 꾸준히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번역가가 타인의 글을 옮기거나 베끼는 것으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고정해놓고 자신의 글을 쓰지 않으면 결국 글과 언어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서 남의 글을 옮기는 것조차 제대로 ..

[번역 이야기] 19. 『채식주의자』 번역에서 우리가 배우지 말아야 할 것 ① - 원문을 대하는 태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영미권에서 뜨거운 찬사를 받으며 상까지 받았지만 정작 그 영어 번역본은 오역 투성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번역가인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는 한강 작가와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며 번역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어째서 이렇게 오역 시비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참 아이러니합니다. 과연 어느 부분이 잘못 번역된 것일까요? 이에 관해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코멘트를 남겨 놓았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문학동네』에 실린 조재룡 교수의 비평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이 비평을 가져온 이유는 우선 조재룡 교수가 개별적인 단어나 표현의 오역을 시시콜콜하게 꼬집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채식주의자』 영어본의 오역은 ..

[번역 이야기] 18. 번역가의 척추를 부탁해 ③ - 스탠딩 데스크

(이전 글) https://ssjstudylog.tistory.com/74?category=875490 [번역 이야기] 17. 번역가의 척추를 부탁해 ② - 의자 (이전글) https://ssjstudylog.tistory.com/67 [번역 이야기] 16. 번역가의 척추를 부탁해 ① - 모니터&모니터 암 번역은 [...]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고된 중노동이다.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육체 ssjstudylog.tistory.com 지금까지 모니터와 모니터 암, 그리고 의자를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남은 건 뭘까요? 바로 책상입니다! 모니터를 시선에 맞추고 고가의 의자를 구매했지만 제 허리는 한동안은 좋아지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책상의 사이즈가 제게 맞지 않는다는 데에..

[번역 일기] 20210713(1) 필사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 샘플 번역에 참여했다가 떨어졌습니다. 검토서를 작성하면서 애정을 적지 않게 쏟은 책이었고, 번역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졌더라구요. 어떤 점에서 제 번역이 부족했을까 궁금하던 차에 감사하게도 출판사에서 피드백을 보내주셨습니다. "철학 에세이 보다는 조금 더 무거운 사회과학 서적 느낌이 난다"고 하시더라구요.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번역을 할 때 청소년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표현을 간결하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번역을 하다가 도무지 어색해서 제 원래 문체로 초벌 번역을 해놓고 나중에 표현을 다듬자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다가 마감에 쫓기고 제가 살뜰하게 빚어낸 표현들을 너무나 아끼게 된 나머지 문체를 크게 고치지 않고 그대로 제출했죠. 결국 이번 샘플 번역은 문체가 맞지..

[번역 이야기] 17. 번역가의 척추를 부탁해 ② - 의자

(이전글) https://ssjstudylog.tistory.com/67 [번역 이야기] 16. 번역가의 척추를 부탁해 ① - 모니터&모니터 암 번역은 [...]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고된 중노동이다.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육체적으로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결코 고상하고 우아하고 느긋하게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서계인) ssjstudylog.tistory.com 앞선 포스트에서 모니터와 모니터 암을 이용해서 목에 최대한 부담이 덜 가는 작업 환경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번에는 허리를 위해 투자할 차례인데요, 대부분의 작업 시간을 앉아서 보내는 만큼 무엇보다 많은 돈이 투자되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의자입니다. 의자 우선 저는 중학생 시절부터 듀오백 의자를 사용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번역 이야기] 16. 번역가의 척추를 부탁해 ① - 모니터&모니터 암

번역은 [...]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고된 중노동이다.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육체적으로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결코 고상하고 우아하고 느긋하게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서계인) 저는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공부하는 자세가 매우매우 안 좋았는데요, 그래서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척추 관련 질환을 달고 살았었습니다. 항상 고개를 90도로 푹 숙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던 탓에 목 근육이 경직돼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편두통이 찾아왔고, 허리가 아파서 카페에서 다섯 시간만 서서 일하고 나면 출근길에 버스를 기다리면서 차도 경계석에 앉아 쉬어야 했죠. 바깥 활동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우선 침대에 누워서 허리 찜질을 30분씩 해야 비로소 책상에 앉을 수 있었던 것도 일상이었습니다. 목과 허리 건강이 갈수록 ..

[번역 이야기] 15. 슐라이어마허의 '말 잡아 당기기'

근대 철학사에 불후의 업적을 남긴 신학자이자 철학자, 그리고 해석학자였던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는 '번역은 저자를 독자에게 데려가거나 독자를 저자에게 데려가는 일이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의 번역론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하는데요, 슐라이어마허의 번역론에는 굉장히 재미있는 구석이 있어서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슐라이어마허가 번역을 '저자와 독자가 중간지대에서 만나도록 도와주는 행위'라고 정의하지 않고 어느 한 쪽을 다른 한 쪽에게 데려갈지 양자택일 하는 행위라고 이야기한 배경을 설명해야 할 것 같아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저자가 사용하는 언어와 독자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A라는 사물을 지칭하는 단어가 저자의..

[번역 이야기] 14.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③ (세미콜론)

(이전글) [번역 이야기] 12.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① https://ssjstudylog.tistory.com/62 [번역 이야기] 12.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① 원문에는 곳곳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항상 시선이 타성적으로 문장을 훑지 않도록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두드리면서 건너야 합니다. 일전에 저는 'haven(피난처)'이라고 쓰인 것 ssjstudylog.tistory.com [번역 이야기] 13.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② (콜론) https://ssjstudylog.tistory.com/63 [번역 이야기] 13.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② (콜론) 앞선 포스트에서 콜론은 '설명'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콜..

[번역 이야기] 13.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② (콜론)

(이전 글) [번역 이야기] 12.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① https://ssjstudylog.tistory.com/62 [번역 이야기] 12.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① 원문에는 곳곳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항상 시선이 타성적으로 문장을 훑지 않도록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두드리면서 건너야 합니다. 일전에 저는 'haven(피난처)'이라고 쓰인 것 ssjstudylog.tistory.com 앞선 포스트에서 콜론은 '설명'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콜론을 사용함으로써 어떻게 설명하는 효과가 나타나는지 여러 예문을 가지고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펭귄 출판사에서 나온 구두점 사용법 가이드(Trask R. L., 『The Penguin Guide To ..

[번역 이야기] 12.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①

원문에는 곳곳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항상 시선이 타성적으로 문장을 훑지 않도록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두드리면서 건너야 합니다. 일전에 저는 'haven(피난처)'이라고 쓰인 것이 'heaven'의 오자인 줄 알고 '천국'으로 번역해버린 적이 있었는데요, 문맥상 천국으로 번역해 놓아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어서 번역문만 보고 검토할 때 오역을 찾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 영어 어휘력을 반성하게 된 순간이었지만, 왜 'e'가 빠진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반성하고 또 반성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원문에는 알파벳 한 글자보다 더 자그마한 복병이 있습니다. 바로 구두점입니다. 앞에서 저는 'haven'을 보고 안일하게 '내가 아는 단어'라고 생각하고 그 의미를 고민하지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