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나 42

[번역 이야기] 11. 번역가가 작가가 되는 순간! ② - 책 제목 번역 꿀팁 모음

(이전글) https://ssjstudylog.tistory.com/59 [번역 이야기] 10. 번역가가 작가가 되는 순간! ① - 책 제목 번역하기 출판사에서는 국내에 새로운 외서를 소개하기 위해 판권 계약을 하기 전에 번역가에게 리뷰를 부탁합니다. 원서를 한 번 읽어보고 그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팔릴 만한 책인지 그렇지 ssjstudylog.tistory.com 우선 제목에 어떤 유형들이 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김학원 편집자는 제목이 여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제목의 여섯 가지 유형은 다음과 같다. '명사'형 (토지, 객지, 아리랑, 연어) '명사+명사'형 (노인과 바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이성과 광기) '형용사+명사'형 (외딴 방, 슬픈 열대, 하얀 전쟁) ..

[번역 이야기] 10. 번역가가 작가가 되는 순간! ① - 책 제목 번역의 재미와 어려움

출판사에서는 국내에 새로운 외서를 소개하기 위해 판권 계약을 하기 전에 번역가에게 리뷰를 부탁합니다. 원서를 한 번 읽어보고 그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팔릴 만한 책인지 그렇지 않은지, 국내에 소개한다면 어떤 독자들을 겨냥해서 마케팅을 하면 좋겠는지 등등 여러가지 의견을 묻죠. 여기에는 '책 제목을 어떻게 정하면 좋겠는지'도 포함됩니다. 제가 여태까지 검토했던 책들 중에는 본문 내용은 너무 재미있는데 원제가 밋밋하고 재미없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책들을 만날 때면 저는 쾌재를 부릅니다. 항상 저자가 한 말을 '받들면서' 저자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는 제가 이 순간만큼은 그 한계를 뻥 걷어차버리고 마치 작가가 된 것처럼 마음껏 창작의 열정을 불태워 제목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책에 원제..

[번역 이야기] 09. 역자 후기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할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나오자마자 번역을 하고 싶었는데 어떠어떠한 사정으로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어쩌다 기회가 생겨서 번역을 하게 되었고 번역하는 동안 힘이 되어준 배우자와 아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등의 사적인 이야기들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역자후기를 싫어하는 편입니다. 역자후기, 혹은 옮긴이의 말은 본문의 내용에 누가 되지 않을 만큼의 품위와 무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무 감동도 재미도 영양가도 없는 메모가 툭 하고 등장하는 게 몰입을 확 깨기 때문이지요. 가급적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저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오롯이 집중되도록 해야 하는 번역가가 느닷없이 깜짝 등장하는 것도 별로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여기까지는 저도 한 명의 독자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만, "그러면 너는 책을 번역하고 ..

[번역 이야기] 08. 저자와 독자를 알기 위한 노력

보편 해석학을 창시하면서 번역 이론에서 걸출한 업적을 남기고 그 자신도 기라성 같은 번역가였던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는 번역가가 독자를 저자에게 데리고 가거나 저자를 독자에게 데리고 가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말은 '직역이냐 의역이냐'는 해묵은 논쟁을 대변하는 말로 흔히 이해되어 왔는데요, '직역이냐 의역이냐' 하는 문제로 슐라이어마허의 이 말을 끌고 들어가기에 앞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저자가 누구고 독자가 누구냐 하는 문제이지요. 저자가 누구고 독자가 누군지를 명확히 알아야 저자를 독자에게 제대로 데려갈 수 있고 독자를 저자에게 제대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포스트에서는 직역과 의역 사이의 논쟁에 관해 다루기에 앞서, 저..

[번역 이야기] 07. AI는 인간 번역가를 대체하게 될까? (2) - 기계 번역의 미래와 인간 번역의 미래

과연 기계번역은 이렇게 언어의 불완전성을 메우는 읽기를 하고, 이에 기반해서 번역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정영목 번역가는 오늘날 기계번역이 거두고 있는 성공이 이러한 '창조적 독해'를 포기함으로써 가능해졌다고 지적합니다. 기계번역에는 물론 읽기가 없다. 아니, 읽기가 사라졌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RMT(Rule Based Machine Translation) 시절에만 해도 마치 외국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구문 분석을 하는 등 인간의 읽기와 비슷한 요소가 어느 정도 있었으나, SMT(Statistical Machine Translation)를 거쳐 NMT(Neural Machine Translation)로 오면서 읽기, 적어도 인간적인 읽기의 요소는 사라져버렸다. 어떻..

[번역 이야기] 06. AI는 인간 번역가를 대체하게 될까? (1) - 번역은 '복제'인가 '창조'인가

요즘은 단순 정보 전달 위주의 웹사이트 번역은 구글번역기를 돌려도 굉장히 자연스러운 편이더라구요. 파파고에 문장을 넣어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출력해줘서 놀랄 때가 많습니다. 이러다 정말 AI가 번역가를 대체하는 날이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죠.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위기감을 느끼는 분야는 한둘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번역계와 번역가가 느끼는 긴장감은 남다르다고 생각됩니다.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었던 언어라는 성역聖域마저 컴퓨터에게 빼앗기게 된다면 더이상 인간이 지성적 존재로서의 '최고 존엄'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들죠. 과연 인공지능은 점점 더 자연스러운 번역문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인간 번역가를 대체하게 될까요? 아니면 인공지능이 결국 넘어설 수 없는 벽..

[번역 이야기] 05. 메이지기 일본의 서양어 번역 - '경제, 사회, 자유'를 중심으로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개념어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예를 들면, [철학]이나 [민주주의] 같은 단어는 처음부터 우리 땅에서 사용되던 단어가 아니라 일본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만들어낸 단어들이었죠. 그러한 점에서 이 단어들에는 일본이 근대성을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일본의 발명품이었음에도 동아시아에서 모두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은 한자를 활용해 번역한 덕분이었죠. 이번 포스트에서는 '경제', '사회', '자유'라는 중요한 개념들이 번역된 역사를 살펴보려고 하는데,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에서도 50~80년의 세월동안 하나의 서양어에 대응되는 번역어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번역어가 난립하고 경쟁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번역 이야기] 04. 번역가의 시간 관리

직장인과 달리 프리랜서인 번역가는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기 때문에 직장인보다 '자유롭다'고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많은 선배 번역가들은 번역가도 직장인처럼 정해진 일정에 따라 작업을 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놀고 싶을 때 노는 것은 번역가로서의 단명을 재촉하는 일이라는 것이죠. 꾸준하게 일정한 퀄리티의 번역문을 매일같이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규격화된 일상을 보내야 한다고 합니다. 번역가로 성공하려면 정말 자기관리의 달인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글나눔에서는 선배 번역가들이 시간 관리를 하는 방법, 매일매일의 노동에 임하는 자세가 어떠한지 살펴볼 수 있는 글들을 모아봤습니다. 이종인, 『번역은 글쓰기다』 中 번역은 손가락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 번..

[번역 이야기] 03. 번역가와 프로그래머

저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책들을 참 좋아하는데요, 그에 반해 소설은 읽어본 경험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을 번역할 때에는 정말 너무 어려워서 진도가 참 더디네요.. 작가가 이 말을 왜 써놓은 것인지 도대체, 도무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의 연속이라 과제를 하는 진도도 참 더디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이렇게 번역이 힘에 부칠 때 제가 자주 꺼내 보는 영상이 하나 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올린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영상인데요.. 여태까지 번역가와 피아니스트를 비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번역가와 프로그래머도 공통점이 참 많은 것 같다는 생각에, 이번 글나눔도 번역가와 다른 직업 시리즈로 준비했습니다:) (너무 우려먹나요ㅋㅋㅠ) 피아니스트와..

[번역 이야기] 02. 번역가는 피아니스트 II

제가 저번 글나눔에서 번역가를 피아니스트에 비유하는 정영목 번역가님의 글을 가져왔었는데, 이번주에도 비슷한 맥락에서 피아노 연주를 가지고 번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책상에 앉아 번역을 하실 때 음악을 들으시나요? 들으신다면 어떤 음악을 들으시는지 궁금하네요ㅎ 저는 번역 과제를 할 때 가끔 피아노 연주곡을 듣곤 하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번역과 피아노 연주를 연관지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종이에 적힌 것을, 무언가를 두드리는 방식으로(아마 대부분 번역을 하실 때 키보드로 작업하시겠지요..?), 다른 소리로 옮겨놓는다는 점에서 번역과 피아노 연주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둘 다 기술과 감을 모두 익혀야 좋은 작품을 빚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더 그렇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