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나/번역 이야기

[번역 이야기] 09. 역자 후기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할까?

서서재 2021. 7. 7. 07:56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나오자마자 번역을 하고 싶었는데 어떠어떠한 사정으로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어쩌다 기회가 생겨서 번역을 하게 되었고 번역하는 동안 힘이 되어준 배우자와 아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등의 사적인 이야기들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역자후기를 싫어하는 편입니다. 역자후기, 혹은 옮긴이의 말은 본문의 내용에 누가 되지 않을 만큼의 품위와 무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무 감동도 재미도 영양가도 없는 메모가 툭 하고 등장하는 게 몰입을 확 깨기 때문이지요. 가급적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저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오롯이 집중되도록 해야 하는 번역가가 느닷없이 깜짝 등장하는 것도 별로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여기까지는 저도 한 명의 독자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만, "그러면 너는 책을 번역하고 나서 역자 후기를 어떻게 쓸건데?"라고 물으신다면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남의 글을 까기는 쉽지만 자기 글을 써내는 건 무지막지하게 어렵죠... 요즘은 역자후기가 생략된 책도 굉장히 많은데, 저도 은근슬쩍 역자후기를 안 쓰면 어떨까 하는 희망을 품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자 후기는 독자를 위해 꼭 필요합니다. 많은 독자가 어떤 책이 읽을 만한 책인지 판단하고 책의 실루엣을 훑어보기 위해 목차와 역자 후기를 읽는데, 역자 후기가 없다면 책의 첫인상이 흐릿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역자 후기가 없다면 독자가 번역가의 성실성에 의구심을 품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한편, 역자 후기는 아무리 쓰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하더라도 번역가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종인 번역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역자후기를 반드시 써야겠다고 마음먹는 번역가는 텍스트를 대하는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다. 뭔가 요령 있고 조리 있는 얘기를 써넣어야 하기 때문에 텍스트의 어떤 부분이 가장 인상적인지, 또 저자가 어떤 부분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지, 텍스트의 배경은 무엇인지, 어떤 관련 자료를 알고 있어야 텍스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지, 온갖 참고사항을 다 의식하게 된다. 그러니 자연스레 번역하기 전에 텍스트를 많이 읽게 되고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많으면 7~8회 집중적으로 읽기도 한다. 이런 집중이야말로 번역을 잘 하게 만드는 한 가지 요인이다. (이종인, 『번역은 글쓰기다』, p.p. 180~181)

 

그렇다면 역자 후기를 어떻게 써야 할까요? 역자 후기에는 어떤 내용들이 들어가야 할까요? 이번 포스트에서는 (저를 위해..) 이러한 내용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우선 역자 후기에 가장 일반적으로 포함되는 내용은 출판사나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께 전하는 감사인사입니다. 하지만 역자후기에 이런 내용밖에 없다면 너무나 영양가가 없죠. 분명히 독자에게 독서의 만족감을 줄 만한 내용이 더 들어가야 합니다. 

 

우선 저자에 관한 추가 정보나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 보입니다. 

『권력이란 무엇인가』로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된 바 있는 한병철 교수는 아마 한국 출신의 철학자로서 독일 주요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주목받고 광범위한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낸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독일의 주요 출판사에서 저서를 출간하며 명성을 얻고 있었지만, 그를 오늘날 독일에서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만든 책은 바로 『피로사회』이다. 이 책이 불러일으킨 예상 밖의 파장은 저자 자신이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바대로 [...] (『피로사회』, 김태환 번역가)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적는 번역가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은 짐작컨대 각자의 여정에 따라 비건촌을 향해 오르고 있을 것이다. 비건 한국 만들기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지치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 오천만 인구가 모두 비건촌에 모여 사는 그날까지 끝나지 않을 고된 여정에 이 책이 유용한 길잡이가 되면 좋겠다. (토바이어스 리나르트, 『비건 세상 만들기』, 전범선·양일수 번역가)

 

책에 대한 자신의 평가나 감상을 조리 있게 적어냄으로써 독자에게 재미 있는 읽을거리를 제공할 수도 있지요.

줄곧 숨 가쁘게 돌아가는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도 이 책의 논지는 놀랄 만큼 차분하고 명징하다. 시간 별로 사건들을 줄줄이 나열하거나 자극적인 수치들을 들이대지도 않는다. 저자의 시선은 그보다 훨씬 깊고 근본적인 지점을 향하고 있다. 덫에 걸린 유럽연합을 이야기하기 위해 맨 먼저 하이에크로 대변되는 자유주의 '시장'론부터 살펴보는 이유가 그러하다. [중략]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럽연합을 옥죄는 '덫'이 이중의 덫임을 지적한다. [중략] 이 책의 미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여기서부터다. 옥스퍼드대 유럽정치학 교수인 얀 지엘론카 교수의 《유럽연합의 종말》과 크게 궤적이 달라지는 부분도 이 부분이다. [중략] 이 책이 동료 학자로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라는 평을 듣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마치 자신의 신념인듯 책 앞부분에 "우리가 '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단 한 걸음일지라도 더 나은 분배적 정의를 향한 주도적이고 '진보적인' 어떤 것을 의미한다"고 밝혀놓은 이 냉철하고 꼿꼿한 노학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클라우스 오페, 『덫에 걸린 유럽』, 신해경 번역가, p.p. 239-243)

 

번역가가 저자와 저자의 작품 세계에 관해 정말 깊이 있게 알고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해설'을 쓰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이런 해설은 좋은 번역과 더불어서 번역가가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의 눈부신 오라 때문에 종종 잊히고 있지만, 우엘벡은 소설가이기에 앞서 보들레르의 후계를 자처하는 시인이며 그것도 세 권의 시집이 포켓판으로 묶일 만큼 드물게 대중성을 인정받는 시인이다. 그는 어떤 록 그룹과 함께 국제적인 순회 공연을 하면서 직접 무대에 올라가 시를 낭송하기도 했고, 그 공연 실황을 「인간의 현존」이라는 음반에 담기도 했다. 1992년에 나온 첫 시집 『행복의 추구』에 실린 다음과 같은 시를 읽어 보면, 『소립자』에 제기된 문제의식이 이미 오래 전부터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셸 우엘벡, 『소립자』, 이세욱 번역가, 역자 해설)

 

하지만 제 생각에는 번역가로서 역자 후기에 무엇보다 중요하게 적어야 하는 내용은 바로 번역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번역에 관한 이야기야말로 번역가만이 할 수 있고, 또 번역가가 해야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우선적으로 역자 후기에서는 번역한 원고(출판사, 판본 등)에 관한 정보나 참고한 번역본의 서지사항을 밝혀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요. 

"이 책의 번역 대본으로는 1961년 Faber and Faber에서 출간된 Zorba The Greek을 이용했다." (이윤기 번역가,『그리스인 조르바』)

편집자의 요청을 좇아 프로이트가 처음으로 확립한 개념어나 정신분석학 술어의 역어에 원어인 독일어를 덧붙였다. 이것을 보고 혹 원전인 독일어에서 바로 번역한 것으로 오해하는 독자가 있을까 봐서 미리 밝혀 두거니와 이 책의 번역은 독일어 대본이 아닌 영어 대본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원전을 번역한 것임에 분명한 일본어 판의 역문은 만연체 늘여빼기와 구어적 중언부언이 심하기는 했지만 때로 의미 파악에 요긴한 방향 가늠자가 되기는 했다. 좋은 참고 자료로 삼았다. [...] 번역 대본은 1990년 펭귄 사에서 출판된 펭귄 프로이트 라이브러리Penguin Freud Library 『종교의 기원The Origins of Religion』을 썼다. 원고 상태에서는 <원주>, <영역자주>, <역주>를 따로 밝혔으나 편집 방침에 따라 <원주>만 밝히고, <영역자주>와 <역주>는 뭉뚱그려져 별도 표시가 없는 <역주>가 된 모양이다. 하지만 <원주> 표시가 되지 않는 각주에는 영역자의 각주가 포함되어 있음을 밝혀 둔다. (프로이트,『종교의 기원』, 이윤기 번역가, p.p. 451-453)

 

그리고 번역을 하면서 언어적 차이 때문에 번역하기 어려웠던 점이나 제대로 옮기지 못한 부분, 의미가 누락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있었다면 밝혀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만연체 문장을 최대한 우리말의 통사구조에 맞게 옮기기 위해 노력했다던지, 아니면 가독성을 우선시하여 문장을 잘랐다던지, 저자의 언어 실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우리말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을 썼다던지 하는 사실들을 밝혀준다면 독자는 자신이 읽은 것이 '번역서'라는 것을 다시금 인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같은 책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번역서를 찾아보거나 직접 외국어를 열정적으로 공부해서 원서를 독파하는 등의 시도를 할 수 있겠죠. 논문을 쓸 때 연구의 한계를 명시하도록 하는 것처럼, 번역가도 역자 후기에 자기가 한 번역의 한계를 적어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졸역의 책임은 모두 옮긴이에게 있다."는 말을 남기는 번역가가 굉장히 책임감 있고 믿음직스럽게 느껴집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기면서 번역에 대한 질문이나 지적을 보내달라고 하거나 블로그에 정오표를 꾸준히 업데이트 해서 올려놓는 번역가들도 있는데, 독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복무하는 번역가의 자세를 대표하는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역자 후기에 이런 내용들을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앞으로 한번 이렇게 써봐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종인 번역가의 글로 포스트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쓴 후기는 약 140편이다. 그 글들이 처음부터 좋은 형태와 리듬을 갖고 있었을까? 아니다. 데뷔하던 해에 썼던 《증발》(스콧 터로 작)이나 《때로는 타인처럼》(앤 타일러 작)의 역자후기를 지금 읽어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왜 이렇게 장황하게 썼으며, 왜 이렇게 아는 척을 했을까, 너무나 후회가 된다. 그러나 모든 게 아는 만큼 보이고, 연습한 만큼 나오지 않는가. 처음부터 대가인 사람이 어디있는가. 지금 막 번역업계에 나온 번역가가 단번에 정영목 씨나 양억관 씨처럼 잘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모든 일에는 시간과 공력이 들어가야 비로소 효과가 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도 언젠가 훌륭한 역자후기를 쓸 수 있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 지금부터 착실한 준비와 훈련을 아끼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이다. (이종인, 『번역은 글쓰기다』, p.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