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나/국내 미번역 외서 리뷰 (검토서)

[외서 발췌 번역] 『Police: A Field Guide』(2017)

서서재 2020. 12. 27. 03:55

제목: Police: A Field Guide

저자: David Correia, Tyler Wall
가제: 『폴리스 필드 가이드 - 다른 언어로 경찰을 이야기하기』 
출간일: 2018. 2.  
페이지 수: 288 페이지 
분야: 인권, 법, 정치 개혁, 정치철학, 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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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o

Shane Burley reports on 100 days of protest against racism, police violence, and white supremacist militias in Portland, Oregon. A movement for police reform, Burley writes, "is now impossible in Portland because police violence itself has escalated the 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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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쓰는 '언어'를 중간에 탈취해서 내용을 바꿔 낀 다음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을 전략으로 삼는 책이다. 

그런데 애초에 미국 경찰이 쓰는 언어와 한국 경찰이 쓰는 언어가 구체적인 표현 면에서 차이가 있어서 한국어본으로는 그 전략을 실현하기가 마땅치 않게 되었다. 

그래도 경찰이라는 조직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성격과 억압성, 폭력성을 조명하는 데에 있어서는 좋은 통찰을 보여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책이었으면 살수차, 용역 깡패, 댓글 공작, 종북 몰이 같은 것도 표제어로 들어갔겠지. 

미국의 핵심 갈등선이 인종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서론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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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경찰이나 경찰 개혁에 관해 이야기할 때 사용되는 언어를 다룬다. 이 언어를 우리는 경찰 집단의 입을 통해 접하게 되는데, 따라서 우리는 이를 ‘경찰어copspeak’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경찰어가 있기 때문에 경찰을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은 제한된다. 문명의 보루인 경찰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거나, 경찰이라는 마지막 저지선이 사라지면 야만적인 ‘무법 지대’가 펼쳐지고 말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것은 경찰어가 있기 때문이다. 경찰어가 묘사하는 대로 세상을 보게 될 경우(경찰어는 이 세상이 항상 무질서와 혼돈으로 위협받는다고 여긴다) 우리에게는 경찰이(아무리 퍼거슨시 경찰이라고 하더라도)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것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게 된다. 또한 경찰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경찰에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도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만 생각하게 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경찰어는 [경찰 폐지가 아니라] 경찰 개혁을 약속한다.


하지만 경찰 개혁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경찰에 의한 폭력이 종식되지는 않을 것이다. 경찰 개혁은 경찰의 이미지 개선에만 치중하면서 경찰이 하는 일들을 뭉뚱그려서 정당화해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이자 가난한 자들을 관리하는 국가의 대리자이며 인종 간 경계가 흐려지지 않도록 감시하는 존재이자 기득권과 경제적 이익의 단호한 수호자이다. 경찰 개혁은 경찰이 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들을 한 번도 다룬 적이 없다. 

경찰을 이해하기 - 자본주의와 식민주의


[…] 경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항상 더 많은 자원과 시장이라는 먹잇감을 찾아 헤맸다. 그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는 유럽의 가난한 노동자와 노예로 삼을 아프리카인과 신대륙의 토착민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려고 애썼다. 신대륙을 식민지화하면서 동원된 경찰력은 흑인과 갈색인(아랍 지역과 동남아 등지의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인종주의적 표현 - 옮긴이)과 토착민이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고통받고 죽는, 그야말로 인종주의적인 자본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이 책은 미국(그리고 캐나다와 호주)에서 과거와 현재에 경찰이 행하고 있는 역할이 무엇인가에 관해 주목한다. 지역이 제한되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각 지역의 경찰이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등장하여 다른 권력 관계를 뒷받침한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현실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정착 사회에서는 토착민의 땅을 강탈하고 그들을 계속 억눌러놓는 데에 경찰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 자본주의외 식민주의는 국가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 국가는 식민주의적 지배와 사유 재산, 그리고 임노동 관계를 보호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특징 짓는 것으로써, 특정 집단이 ‘소유’를 하지 못하게 배제하고자 한다. 국가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실력(實力)을 갖추고 있다. 다시 말해 경찰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결론은 이것이다. 경찰이 없다면 식민주의도 자본주의도 없다!

 

 

『폴리스 필드 가이드 - 다른 언어로 경찰을 이야기하기』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경찰이라는 조직은 구체적이고 철저한 사유의 대상이 아닌 자명한 대상처럼 보이곤 한다. 경찰에 관한 논의는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에 관한 이야기에 국한될 때가 많았고 그 이상이 이야기되는 경우는 적었다. […] 감옥과 처벌에 관한 많은 중요한 문헌들을 보면 유색인종을 체포하고 못살게 굴고 가둬놓는 경찰에 관한 이야기가 이곳 저곳에서 고개를 내밀지만, 경찰력과 국가 폭력 사이의 관계가 직접적으로 규명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다. 이로써 일종의 사회에 관한 구상이자 사회 제도나 과정으로서의 경찰에 관한 논의는 불분명한 상태로 남아버렸다.


이것이 가져온 일반적인 결과 중 하나는 바로 경찰에 관해 이야기할 때 사용되는 언어가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듣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경찰의 ‘치안 유지 활동policing’이라는 말은 ‘범죄와 맞서 싸우는’ 활동과 동일시되거나 단순하게 ‘사회에 대한 통제’나 ‘법 집행’과 구별되지 않고 사용된다. 경찰이 치안을 보장한다는 논리대로라면 과연 그것을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치안을 유지한다는 생각이나 그러한 과정에는 한번쯤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넘어가기에는 과도하게 많은 힘이 부여된다. 경찰이라는 공공 기관은 사회에 관한 정치적 구상이자 역사사회학적 힘의 산물이다. 이 책은 경찰이 하나의 제도로써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역사와 한계,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경찰에 관한 신화에 어떤 것이 있고 현실은 무엇인지 등을 물으며 경찰의 활동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경찰이 인종 자본주의와 맺고 있는 관계를 직접적으로 사유해보고자 한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자본주의는 경찰이 필요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경찰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일상에서 실행하는 매개로서, 경찰을 통해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는 비로소 존속한다. 


따라서 이 책은 ‘경찰어’가 묘사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보기를 거부한다. 우리가 경찰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과 경찰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경찰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 중에는 경찰 자신이나 경찰 개혁론자들로부터 유래한 것이 너무 많다. […] 이 책에서 당신은 경찰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백여 개에 달하는 가장 일반적인 용어와 개념의 정의를 보게 될 텐데, 체포, 순찰, 총기를 비롯한 다양한 개념들이 새로 정의되었다. […] 우리가 내린 정의들은 경찰이 범죄자를 체포하고 범죄가 들끓는 곳을 순찰하며 범죄를 막고 공공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만 총기를 사용한다는 표준적인 관점을 거부한다. 이 책에서 제공하는 정의들을 통해 독자는 경찰이 범죄에 맞서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인종적·경제적 특권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폭력 노동’을 행하는 존재라는 비판적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감옥과 창살과 무장 경찰이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경찰/감옥 폐지론과 동일한 꿈을 꾼다. 이 책에서 우리는 여태까지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경찰어, 그러니까 우리가 경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그 언어에 관해 살펴볼 것이다. 이 책은 경찰봉의 사용을 다르게 이해하고 순찰의 의미를 다르게 설명하며 경찰에 의한 체포와 심문을 다르게 정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이 책은 친근하다고 생각되는 이웃 경관님이 왜 마냥 친근하지만은 않은 존재인지 설명해줄 것이며, 왜 테이저건이 사용하기에 따라서 비살상무기가 아닐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던 것과 다르게 왜 경찰이 군대와 다른 점보다 유사한 점이 더 많은지 알려줄 것이다. 


『폴리스 필드 가이드』는 다른 필드 가이드(탐사·채집·낚시·출사 등을 할 때 자연에서 마주치는 동식물의 식별을 돕는 도감 - 옮긴이)와 마찬가지로 뻔히 눈앞에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드러내 알아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왜 감독을 늘려도 경찰에 의한 폭력은 멈추지 않는가? ‘지시에 순응하지 않았다’는 말은 경찰의 언어 체계 안에서는 어떤 의미인가? 경찰의 지역 사회 활동과 군대의 점령지 순화 전략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우리가 경찰의 제복과 배지, 경찰견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경우에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법’과 ‘치안’, ‘질서’와 같은 용어나 개념들에 관해 경찰의 관점에서 내려진 정의를 우리가 거부함으로써 경찰에 관해 어떤 관점을 얻을 수 있게 되는가? 우리가 경찰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을 멈추고 세상이 위협이나 긴급 사태, 혼돈으로 가득차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 책은 경찰에 관한 백과사전은 아니다. 우리는 이 책에 모든 내용이 담겼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우리가 분석하고 있는 장소 또한 모든 나라를 포괄하고 있지 않다. 이 책에 담긴 예시와 사례들은 대부분 미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는 이 책의 필진이 미국에 있고 미국의 경찰을 경험했으며, 그에 따라 미국에서 일어난 일에 특별히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 책에서 엮은 용어와 개념 리스트는 경찰에 관한 필진의 생각과 연구를 반영한 것이며, 여기에는 많은 학자와 활동가들의 작업이 영향을 끼쳤다. 우리는 이 책의 표제어들이 미국 바깥에서도 유의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세계의 독자들은 이 책의 지면 위를 살금살글 걸어다니는 경찰과 독자의 지역사회를 순찰하는 경찰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백과사전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사전 또한 아니다. 이 책의 표제어들은 제각기 하나의 완결적인 글이 될 수 있도록 쓰였다. 여러 표제어를 같이 읽는다면 경찰과 경찰의 활동을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물론 첫 장부터 끝 장까지 한 번에 읽을 수도 있지만 다른 접근법을 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각자 고유한 관심사에 따라 표제어를 선택하거나 임의로 아무 표제어나 골라보면 빨간 글씨로 쓰인 용어와 개념들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들은 그 용어가 이 책 어딘가에서 정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떤 독자는 ‘경찰의 지역 사회 활동’을 먼저 읽은 다음 ‘빈민가’를 읽고 ‘깨진 유리창’을 읽으면서 계속 독서를 이어갈 수도 있고, 어떤 독자는 ‘법’으로 시작해서 ‘질서’, ‘범죄의 억제’, ‘경찰 헬기’ 등의 순서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각자 가장 흥미로운 생각의 흐름과 가장 와닿는 연결고리들을 따라가다보면 『폴리스 필드 가이드』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책이 될 수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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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 경찰 폭력의 기술과 전략
총기 / 알리바이용 무기 / 테이저건 / 최루탄 / 수갑 / K-9 경찰견 / 인종 프로파일링 / 불심 검문 / ‘거친 드라이브' / 체강 수색 / 통금 / 강간 / 린치 / ‘별이 쏟아지는 여행’ / 손전등 / 경찰봉 / 목 조르기 / 보디캠 / 경찰 헬기 / 교통 통제 / 검문소 / 페인 컴플라이언스

2. 경찰의 핵심 가치
사적 소유 / 질서 / 치안 / 평화화 / 법 / 범죄 / 폭력 / 전쟁 / 강제력 / 관할 영역 / 경찰 배지 / 질서의 지킴이 / 전문성 제고

3. 경찰 조직은 어떻게 구성되고 수호되는가
경찰 조폭 / 지역 사회 활동 / 빨갱이 전담반(’Red Squad’) / 조폭 전담반(’CRASH’) / 시민단체 전담반(’COINTELPRO’) / ‘친근한 경관님’ / SWAT / 군대화 / 경찰 유니폼 / 노예 전담반 / 경찰 빌리기 / 감독 / 경찰 노조 / 경찰 개혁

4. 강제력의 사용 — 경찰이 질서를 강제하는 법
수색 / 순찰 / 관할 구역 / 조사 / 재량 / 범죄 예측 / 컴퓨터 통계 기반 접근(CompStat) / 빈민가 / 젠트리피케이션 / 깨진 유리창 / 거동수상자 / 심문 / 착한 경찰과 나쁜 경찰 / 추격 / 군중 / 경찰의 잔혹성 / 체포 / 시야 내 확인 / 재산 몰수 / 증거 조작 / 경찰관

5. 경찰어 — 경찰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가
위협 / 위기 / 썩은 사과 / 억제 / 불비례 / 퍼거슨 이펙트 / 은밀한 행동 / 정당화 / 비인명 사건 (NHI) / 비협조 / 경찰이 관계된 총격 사건 / 시민 / 합리적 의심 / 비무장 / 물리력 사용의 단계적 증가 / 범죄학

에필로그: 경찰 없는 세상

본문 (인상적인 부분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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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찰 폭력의 기술과 전략


목 조르기
1980년대에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목 조르기를 하다가 열여섯 명을 죽였는데 이 중 열네 명이 흑인이었다. 이를 두고 당시 로스앤젤레스 경찰청장이었던 데릴 게이츠(Daryl Gates)는 “몇몇 흑인”의 동맥의 생물학적 구조가 “정상인”과 달라서 목 조르기를 당했을 때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을 남기며 목 조르기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게이츠 청장은 로드니 킹(Rodney King) 구타 사건 이후 목 조르기의 재도입에 관한 연구 용역을 맡기면서 목 조르기가 페인 컴플라이언스(pain compliance, 진압 대상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무력화 시키는 기술)로서의 경찰봉 사용을 줄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경찰은 목 조르기를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훈련상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또 경찰은 기도에 직접적인 압력을 가해서 의식을 잃게 만드는 것은 과잉 진압이라고 보면서도 경동맥을 압박하여 혈류를 차단하는 목 조르기는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목이 졸리고 있는 사람에게 한번 해 보라. ‘괜찮은 목 조르기’와 ‘괜찮지 않은 목조르기’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

목조르기는 미국 경찰의 역사에서 폐지와 부활을 반복하고 있지만 어찌되었건 매번 희생자를 낳았다


페인 컴플라이언스
[…] 페인 컴플라이언스(Pain compliance)는 경찰이 진압 대상에게 고통을 가하기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기술을 일컫는다. […] 고통을 당하는 사람만이 경찰력이 집행되는 올바른 대상이 될 수 있는데, 그 고통의 정도를 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경찰 뿐이다. […] 경찰의 입장에서 고통은 언제나 순응하는 대상을 만드는 데에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대상이 순응하지 않는다면 고통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 


2. 경찰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

사적 소유
사적 소유는 단순히 소유자와 소유물 사이에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다. 무언가를 사적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사회에서 폭력으로 점철된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 다시 말해 누군가가 타인을 무엇으로부터 박탈시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내가 허락을 받거나 돈을 내지 않고 식료품점에서 음식을 챙기거나, 자동차 대리점에서 자동차를 끌고 나오거나, 아무도 쓰지 않는 침실에 이사해 들어간다면, 그렇게 하면서 처벌을 받거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여기서 음식과 자동차와 침실은 사유 재산이라고 말할 수 없다. 배타적 점유를 관철시킬 수 없다면 사적 소유도 없다. 따라서 사적 소유의 근저에는 언제나 강제력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 말은 곧 폭력 없이는 사유 재산 또한 없다는 말과 같다. […] 경찰의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사유 재산이 있는 장소를 순찰하며 경계를 지켜주고 무단 침입자를 체포하고 불법 거주자를 쫓아내고 실직한 사람의 집을 담보로 잡는 것이었다. 사유 재산을 잠식해 들어가는 것은 자본주의적 질서에 대한 위협이며, 이를 관리하는 것이 바로 경찰이다. 

치안
치안은 경찰에 관한 이야기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경찰이 하는 모든 일이 치안 유지라는 명목 하에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 국가 안보를 위한다는 명분에 의해 거의 모든 외교 정책이 정당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내 정책은 그것이 아무리 폭력적이고 잔혹한 것일지라도 치안 유지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된다. 여기서 말하는 치안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흑인이나 갈색인이나 원주민이 다른 집단보다 더 많이 수감되어 2백만 명이나 되면 치안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고, 매년 경찰에게 죽임을 당하는 천 명이 넘는 사람 중 대다수가 가난한 사람이라면 치안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치안은 누구를 보호하는가? 경찰을 움직이는 힘인 치안은 범죄로부터 안전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판결을 보면 사실상 경찰에게는 개개인을 보호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 명확해 보인다. 경찰에게는 사실상 질서를 수호할 의무만이 있을 뿐이며 질서를 수호하는 것이야말로 경찰이 법에게 위임받은 일이다. 여기서 질서를 수호한다는 말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 관계를 공고히한다는 말과 같다. 만약 당신이 재산이 많거나 상류층에 속하지 않는다면 경찰은 당신에 관해 별로 신경쓰지 않으며 당신이 치안상 얼마나 안전한지도 관심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은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당신은 무질서와 사회 불안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당신에게는 법과 질서가 제공하는 보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법과 질서로부터 떨어져서 보호받는 것이 필요하다. 자, 경찰이 치안 유지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잊지 말라. 그들이 말하는 치안은 당신의 안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범죄
을 어기면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범죄라는 범주의 구성에서 경찰이 하는 역할을 도외시하고 있다. 불법은 법이 만들지만, 범죄는 경찰이 결정한다. 무엇이 범죄인가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조사하고 심문하고 체포할 수 있는 경찰의 힘에 의해 구성된다. […] 범죄인 것과 범죄가 아닌 것, 범죄자인 사람과 범죄자가 아닌 사람을 규정할 수 있는 힘은 오로지 경찰에게만 있다. 
[…]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범죄라는 범주는 사회를 통제하고 사회에 질서를 부여하는 기본 수단으로 기능하게 된다. 20대 흑인 남성 열 명 중 한 명이 현재 감옥에 있으며, 흑인 남성 세 명 중 한 명은 일생의 어느 한 순간에 한번씩 감옥에 가게 된다. 하지만 우리에 가둬지기 전에 우리는 먼저 경찰에게 체포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범죄란 법이 아니라 경찰의 재량에 기대어 있다. 그러므로 범죄는 경찰과 관련된 범주이다. 

 


3. 경찰 조직은 어떻게 구성되고 수호되는가


지역 사회 활동
[…] 경찰의 지역 사회 활동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사회 질서를 창출하는 데에 필요한 지역 공동체의 지시와 협조를 얻는 최고의 정책이라고 말한다. […] [하지만] 경찰의 지역 사회 활동에 담겨있는 본질적인 의미는 경찰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찰 폭력이 더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느껴진다는 데에 있다.
경찰이 지역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은 군대가 점령지 순화 활동을 하는 것과 같다. […] 두 활동 모두 점령을 정당화하고자 하며, 더 효과적으로 질서를 강제하기 위해 지역 공동체와 신뢰를 쌓고자 한다. 군 장교가 점령지 부족 원로들과 티 타임을 가질 때, 경찰관은 빈민가 아이들과 야간에 농구 게임을 한다. […] 

친근한 경관님
경찰은 주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감으로써 지역 사회를 순화한다. 경찰관의 “친구 같은” 이미지는 아무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찰이 정의하는 방식대로 세상을 보게 만들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경찰 지배에 적합한 대상, 그러니까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의 인종적 질서에 관해 절대로 의문을 던지지 않는 순종적이고 공손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노동자 혹은 밀고자로 만든다. […] 여기에서 대두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경찰의 지역 사회 활동의 일환인 ‘친근한 경관님’ 만들기를 통해 단순히 강제력에만 기반하지 않고 동의에도 기반한 사회적 질서가 구축된다. […] ‘친근한 경관님’은 경찰의 목표를 잘 달성해주는 전략으로서, 경찰이 독점하고 있는 폭력을 덜 극단적으로 만들고 인간화하여 눈에 띄지 않게 만든다. 그러는 사이에 특정 인종들에게는 고통과 수모를 당하는 현실이 반복된다. […] 아무리 경찰이 웃는 얼굴로 친근하게 다가온다고 해서 경찰이라는 권력은 결코 공명정대하거나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이지 않다. 그들은 언제나 각종 무기와 수갑을 들고 다닌다. […] 

주민 바베큐 파티에 참석하여 고기를 굽고 있는 미국 경찰


4. 물리력의 사용 - 경찰이 질서를 강제하는 법


재량권
재량권이란 특정 상황에서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지에 관해 판단할 수 있도록 경찰에게 위임된 법적 권한을 말한다. 재량권은 경찰력이 행사되는 상황 일반에 걸쳐 있다. 어디를 순찰할 것인가, 언제 물리력(강제력)을 사용할 것인가, 누구를 체포할 것인가, 누구를 죽이고 살려 놓을 것인가. […] 사실상 법원은 경찰의 재량권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을 계속해서 거부해왔다. 재량권을 정의한다는 것은 곧 경찰이 가진 힘을 제한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재량권은 집행 권력으로서의 경찰력을 이해하는 데에 핵심적이다. 여기서 경찰 한 명 한 명은 “작은 주권자”이자 “일상의 행정부”가 된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경찰이 법적 근거에 따라 강제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하지만, 경찰이 가진 힘은 법에 의해 제한될만한 것이 아니다. 재량권이라는 범주가 바로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 법은 지금 당장 무엇이 불법인지를 결정하지만 그것이 미래에 어떻게 집행될지는 경찰의 선택으로 남겨놓는다. […]

 


5. 경찰어 — 경찰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가


시민과 공공성
[…] 경찰은 공무원으로서 낮은 임금과 높은 업무 스트레스, 현실적인 위험과 수많은 질타를 받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시민을 위해 일한다고 한다. 경찰관들은 공복으로 일하는 자신들에게 시민들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현실에서 좌절감을 느낀다. 경찰은 범죄를 줄이고 근절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인권을 존중하면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해명할 수 있어야 하고 공공 감독에도 따라야만 한다. 경찰은 시민을 위해 일하지만 무슨 일이 터지면 죽을 고생을 하며 시민들을 대해야 한다. 경찰이 경험하는 고유한 어려움을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경찰의 결론은 이렇다. 시민들은 그저 경찰관을 믿고 경찰에게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경찰이 이처럼 사사건건 “시민과 공공성”을 들먹이며 자기정당화를 꾀하는 것은 정치적 기만일 뿐이다. 니나 파워(Nina Power)는 경찰이 공공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말하며 “경찰은 시민과 공공성을 위해 일하고 있지 않으며 일했던 적도 없다”고 일갈한다. […] 크리스토퍼 윌슨(Christopher Wilson)이 논증한 바와 같이, 경찰 권력이 바라 마지않는 시민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시민은 경찰과 경찰의 후원 기업과 언론인이 합심해 만들어낸 정치적 가공물일 뿐이다. […] 만약 경찰이 시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시민이란 굉장히 제한적이고 협소하며 고립된 집단으로서, 사유 재산을 소유하고 축적하는 사람만을 의미한다. 경찰은 ‘저항하는 시민’을 쳐내고 그 자리에 ‘소비하는 시민과 일하는 시민, 순종적인 시민’을 심어놓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