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철학과 기술 - 잡다한 실험들/etc

나만의 공부 공간을 만드는 것에 관하여.. (발췌와 단상)

서서재 2020. 2. 2. 17:15

김윤관, 『아무튼, 서재』, 도서출판 제철소, 2017.

p20/서재에 대한 상상은 언제나 즐겁다. 서재는 단지 책으로 가득 찬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서재'라고 불리는 공간에 '서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먼 옛날에는 그 공간에 놓을 물건이, 그러니까 별일 없이 빈둥거리기도 하고 공부도 하며 오롯이 혼자서 자기만의 시간을 쓸 수 있는 공간에 놓을 적절한 물건이 책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언제든 내가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텔레비전, 소파에 등과 목을 기대고 멍해질 수 있는 오디오처럼 동일한 목적을 위한 다양한 물건들이 나와 있다. 서재에서 책이란 그저 예부터 전해온 유용한 물건의 한 종류일 뿐이다. 서재에 책만을 들이겠다 고집할 필요는 없다. 오늘도 나는 서재에 앉아 서재를 상상한다. 행복하다.

책장 ─ 책을 사랑하는 자가 가져야 할 균형

p23/나는 국내 어느 애서가의 서재에서도 장서에 걸맞는 책장을 만나지 못했다. 책을 향한 그들의 애정을 생각하면 책장에 대한 무관심은 놀라울 정도다. 만년필 수집가가 애장하는 만년필을 3000원짜리 플라스틱 필통에 보관하는 예를 본 적이 없다. 만년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보관함 역시 그 만년필의 격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 p24/책은 주인의 손보다 책장에 더 오래 머문다. (...) 한 달에 30만 원씩 책을 구매하는 애서가임을 자랑하면서 MDF에 월넛 필름지를 바른 p25/책장을 쓰는 사람을 문화의 영역에서 진정한 애서가라고 인정하는 것이 나로서는 몹시 어색하다.

p30/책장의 목적은 간단하다. 책을 많이 보관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되도록 지저분하지 않고 아름답게 보관하고 싶다는 욕망을 바탕으로 한다. 이 목적을 위해서는 책장의 재료와 형태만큼 중요한 것이 책장 칸의 높이와 넓이다.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책장들은 대개 다섯 칸이며, 한 칸의 높이는 35cm, 깊이는 29cm 정도이다. 여섯 칸짜리 책장의 한 칸 높이는 대개 30cm이다. 이 사이즈는 소위 '사팔(4x8) 사이즈'라고 부르는 원자재의 크기에 따른 것이다. 가구공장들은 대개 가로 1220mm, 세로 2440mm의 합판 혹은 집성판을 사서 쓴다. 이 원자재를 최대한 손실 없이 사용하는 사이즈가 위에 말한 일반적인 책장의 사이즈가 되는 것이다. 이 사이즈 책장의 문제는 일반적인 책의 크기와 연동되지 못해 책장을 지저분하게 사용하도록 유도한다는 데 있다. 책장의 한 칸을 떠올려보자. 수직으로 꽂은 책들 위에 p31/공간이 남는다. 자연스럽게 그 책들 위에 수평으로 책을 쌓는다. 책을 꽂은 앞부분에도 여분의 공간이 남는다.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 액자를 두거나 열쇠, 약통, 작은 컵 등등을 놓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직으로 꽂은 책들의 단정한 모습은 사라지고 책장은 무질서한 책들과 잡다한 물건들의 보관함처럼 변해간다.

일반적인 소설 크기의 책을 간결히 꽂기 위한 칸의 적정 높이는 25cm이다. 이보다 높으면 책 위에 다시 책을 쌓게 되며, 이보다 적으면 책을 꽂고 뺄 때 손가락이나 책 끝이 걸려 불편하다. 시집과 작은 판형의 소설에 맞는 칸의 높이는 23cm이다. 『엘르』나 『보그』 같은 잡지를 위한 칸의 적절한 높이는 32cm이다.

책상 ─ 온전한 나를 대면하기 위한 필수품

p35/책장이 인풋의 장치라면 책상은 아웃풋의 도구이다. 책장이 인트로라면 책상은 메인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책상은 '나'라는 주체성의 기물적 상징이다. 독립된 인간은 반드시 자기만의 책상을 소유해야만 한다. (...) 당신만의 책, 당신만의 노트, 당신만의 연필, 당신만의 지우개, 당신만의 스탠드 조명을 둘 수 있는 당신만의 책상!

p40/미니멀리즘은 세간의 오해와 달리 '모든 것의 정답'이 아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정답인 것은 사실이다. (...) 미니멀과 컬러의 조합을 p41/통해 21세기 가장 중요한 디자이너로 등극한 카림 라시드는 자신이 생각하는 책상의 이상적인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책상 위는 깔끔해야 한다. 깨끗해야 한다. 그리고… 텅 비어야 한다(Keep your desk neat, clean and… empty). 책상 위에는 꼭 있어야 할 것만 두라. 컴퓨터, 전화기, 전기스탠드, 펜, 종이, 그것으로 끝이다. 나머지는 치워도 된다. 파일은 서랍 속에 넣고, 참고서적은 선반에 올려놓아라. 책상을 치울수록 정신은 맑아질 것이다… 책상에서 지저분하게 음식을 먹지 않도록 하라." (카림 라시드, 이종인 옮김, 『나를 디자인하라』, 미메시스, 2015)

의자 ─ 서재의 럭셔리, 의자

p49/적은 돈을 써도 '사치'인 물건이 있고, 많은 돈을 써도 '럭셔리(luxury)'인 물건이 있다. 패션 디자이너 샤넬의 말처럼 럭셔리의 반대말은 빈곤이 아니라 천박함이다. 우리는 사치를 천박함이라 부른다. 럭셔리와 천박함의 경계를 나는 '취향'이라고 본다.

p55/의자는 가구 중에서도 가치와 가격이 불균형한 대표적인 품목이다. '의자가 중요하다', '좋은 의자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높은 가격을 설득시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p54/적어도 의자와 매트리스를 구입할 때만큼은 '낮은 가격과 디자인'이 아니라 '기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p52/[사람들은] 기능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테이블에는 수백만 원을 기꺼이 지불하면서도 건강에 직결된 의자에는 몇십만 원도 비싸다며 손사래를 친다. 수백만 원에서 1000만 원대에 이르는 평상형 월넛 침대를 주문하겠다면서 막상 매트리스는 100만 원도 안 하는 제품을 쓴다는 고객을 만날 때만큼이나 당혹스럽다. p53/첫 월급으로 의자를 산다는 덴마크 사람들처럼 첫 월급을 받으면 사무실에서 쓸 자기만의 의자를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 가까운 지인의 개인 사무실이나 작업실 오픈 선물도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여럿이 돈을 모아 좋은 의자를 선물하면 된다. 허먼 밀러 사(社)의 '에어론 체어(Aeron Chair)'라면 훌륭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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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서재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아무튼 시리즈의 두 번째 책. 목수 김윤관의 첫 책이다. 주로 서재에 들이는 가구를 만드는 저자가 자신만의 언어로 서재에 관해 쓴 에세이 아홉 편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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