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철학과 기술 - 잡다한 실험들/etc

최적의 에버노트 사용법을 찾아

서서재 2019. 6. 19. 20:37

나는 에버노트를 2013년부터 상당히 애용해왔다. 그동안 매월 6,000원씩 꼬박꼬박 내면서 '에버노트 프리미엄'을 구독하고 있고, 저장된 노트도 현재 5200개가 넘는다. 내 에버노트 계정에는 한 줄짜리 메모부터 일기, 할 일과 일정, 스크랩한 신문기사나 사진/지도, 메일, E-Book, 직접 만든 외국어 사전, 수업시간에 제출한 과제 등이 모두 들어있는데, 이렇게까지 에버노트에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들어가게 된 이유는 내가 나의 뇌를 거친 모든 자료와 나로부터 생산된 모든 자료가 한 곳에 기록되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물론 에버노트에 불편함을 느꼈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에버노트를 그동안 애용해온 유저들이 으레 그렇듯, 나 또한 노트의 개수가 수백 수천 개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만 가는 노트들이 감당되지 않았다. 노트북 안에 챕터를 만들고 그 안에 노트들을 서열화하여 조직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원노트와 다르게, 에버노트는 오로지 '스택'과 '노트북'으로만 노트를 분류할 수 있었다. 가령 어떤 책을 읽고 떠올린 생각이나 책에서 스크랩한 내용을 기록한 노트를 만든다면  "메모 > 책 메모 > 책 제목 > Ch.1 > 노트"와 같이 분류하는 것이 가장 깔끔한 방법 중 하나일 텐데, 에버노트에서는 "스택:메모 > 노트북:책 메모 > 노트"로밖에 정리할 수가 없었다. 노트를 세세히 분류할 수 없으니 정리가 되지 않았고, 필요에 따라 노트를 찾는 것도 어려웠기에 점점 새로운 노트들을 추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이때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이 에버노트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넘쳐나는 노트들을 정리하고 어떻게든 에버노트를 계속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다시 안 볼 것 같은 노트들을 전부 지워버리거나, '노트북' 대신 '태그'를 활용해서 노트를 정리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두 방식 모두 지금까지 작성한 모든 노트들을 일일이 읽어야하는 중노동을 요구했고, 무엇보다도 에버노트의 구조적 한계 안에 계속 머문다는 것, 스택 안에 다른 스택을 넣지 못해서 정리되지 않는 노트북들에 새로운 노트를 계속 추가한다는 것은 여전히 막막했다.

 

한창 에버노트의 인기가 떨어질 때 즈음 경쟁 메모앱인 OneNote에서는 에버노트를 원노트로 불러올 수 있는 이사 패키지 같은 것을 출시했다. 나도 이사를 가보려고 스택 한 개만 이사를 시켜보았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전체 노트를 다 옮길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에버노트를 떠나지 않은 것은 이미 저장된 노트들을 다른 포맷의 앱으로 옮기는 게 감당이 안되었던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여타 노트앱이 제공하지 않는 에버노트만의 기능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에버노트 프리미엄을 구독하면 제공되는 매월 10GB의 저장용량, PDF 파일을 노트 안에서 바로 열람할 수 있고, 심지어 PDF 파일 안의 문자열들까지 검색해주는 기능, 워드프로세서처럼 무겁지 않고 정갈하게 있을 것만 딱 있는 텍스트 편집 기능, 다른 앱과의 강력한 호환성, 내가 작성한 노트들끼리 관련된 것들을 묶어서 보여주는 스마트 추천 기능 등등.. 이런 기능들을 포기하기는 것은 어려웠다. 앱스토어를 샅샅이 뒤져가며 여러 가지 노트 앱들을 다운받고 사용해보았지만 더 만족스러운 앱이 없었다. 사실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위기에 봉착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에버노트는 비할 데 없이 훌륭한 앱이었다. 그러니 유일한 해결책은 내가 에버노트를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뿐이었다.

 

나는 기존까지 내가 에버노트를 사용해왔던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어떤 정렬 방식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정리가 잘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에버노트에서 제공하는 다른 고급 기능들을 100% 사용한다면 "스택-노트북"의 한계 안에서도 충분히 더 잘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에버노트에서 노트북을 2겹 이상 쌓을 수 없다는 것은 제일 답답한 부분이지만, 이렇게 많은 노트를 원노트에서 작성했다면 지금보다 더 복잡해지지 않았을까. 노트북 안에 노트북을 넣고 노트북을 넣고, 또 노트북을 넣을 수 있으면 끝없이 가지를 뻗어나가는 디렉토리 속에 마찬가지로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에버노트에서 저장공간의 트리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제약이 아니라 능률을 높여주는 조건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안에서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정리방식을 한번 찾아보자!

 

이렇게 의지를 다지며 계속 새로운 방식들을 시도해온지가 벌써 1년 반..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에버노트는 불편하다'며 에버노트를 떠났지만, 나는 에버노트로부터 자료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가공하고 활용하는 법을 배웠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결국에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에버노트를 사용하는 법들을 찾았다.

 

자, 그래서 이제는 내가 그동안 개발해온 에버노트 사용법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단순히 '에버노트를 잘 쓰는 법'이 아니라, '에버노트를 활용하여 지적 작업의 능률을 높이는 방법'들을..! 나 자신의 지적 성취가 아직 걸음마 단계도 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 대단한 것들은 선보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디지털 기술로 공부와 일을 더 잘/재미있게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영감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