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나/번역 이야기

[번역 이야기] 01. 번역가는 피아니스트 I

서서재 2021. 7. 5. 11:16

바른번역 아카데미 실전반 수업을 들으면서 동기들과 매주 번역과 관련된 단상이나 잘 번역된 글을 나누곤 했습니다. 그때 못다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이 게시판을 통해 나머지 이야기들을 이어나가보려고 합니다:)

 

우선은 정영목 번역가의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와 호프 자런의 『랩걸』(김희정 번역가)에서 몇 편의 발췌한 몇 편의 글로 문을 열어볼까 합니다. 

 

첫 번째 꾸러미에는 번역가라는 직업에 관한 성찰이 돋보이는 세 편의 짧은 글을 담아 왔습니다. 실전반 수업 때 선생님께서 '다양한 지문을 접하면서 문장 적응력과 융통성을 길러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 말씀이 떠올라서 여기에 어울리는 글들을 골라 보았습니다. 이 글의 저자인 정영목 번역가는 번역가가 피아니스트나 배우처럼 맡은 작품에 따라 여러가지 색깔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번역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님에도 예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전자책으로 읽어서 정확한 페이지를 기입하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ㅠ)

 

두 번째 꾸러미에는 어느 여성 식물학자의 이야기를 담아왔습니다. 책이 재미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무척 몰입해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요, 발췌된 부분에는 특히 시각적·촉각적 이미지가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인상이 오래 깊이 남았습니다. 번역가가 작품을 성공적으로 연주한 멋진 사례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글을 다시 꺼내 읽으면서 저도 언젠가 이렇게 독자들에게 쾌감을 줄 수 있는 번역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께도 즐거움을 주는 글들이면 좋겠네요.


「누구의 한국어도 아닌 한국어」中

[…] 내가 만약 작가라면 나의 언어를 갈고 다듬고 살찌우고 또 갱신하고, 그러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번역가는 나의 언어에서, 나의 목소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숙명이다. 외국어가 그 매개가 될 것이다. 즉 번역가는 외국어를 붙들고 나의 언어에서 나오는 존재이다. […] 외국어 원문의 목소리가 나의 목소리와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한국어라 해도 대개는 나의 언어가 아닌 다른 한국어를 선택해야 한다. 만일 모든 번역에서 늘 자신의 한국어로 돌아가는 번역가가 있다면 그 사람을 성공한 번역가라고 부르지는 못할 것 같다. […] 어떤 면에서 번역가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는 외국어를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국어를 나의 한국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한국어로 구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씨네21』‘김혜리가 만난 사람’ 인터뷰 (2008년 11월, “세상 모든 일이 번역인지도 모르죠”) 中

Q. 다양한 작가의 책을 작업했는데 옮긴이가 같아 나타나는 문체의 일관성이 전혀 없을까요?

A. 누군가 그런 말을 제게 해준다면 최악의 평가일 겁니다. 피아니스트에게 베토벤과 쇼팽을 똑같이 연주했다는 말과 같은 거니까. […] 훌륭한 배우의 경우 어떤 배역을 연기했을 때 “이게 그 사람이었어?” 하고 놀랄 때가 있잖아요?

 

「읽기로서의 번역」中

4. […] 창작과 번역 가운데 어느 것이 우월한가 하는 질문이 과연 성립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설사 그런 비교를 받아들인다 해도, 일반적으로 창조된 작품이 무조건 번역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령 삼류의 창작물과 고전적 명작의 충실한 번역을 비교한다고 했을 때, 창작물은 창조된 것이므로 무조건 번역보다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

5. […]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고 해서 무조건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생각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가령 남이 쓴 곡을 연주하는 음악은 예술이 아닐까? 눈 앞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그림은 예술이 아닐까? 어떤 인물을 찍은 사진은 예술이 아닐까? 만일 이런 것들이 예술이라면 이들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작업에 인간의 창의성이 개입되어 있다면, 그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소박한 의미의 창조와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겠지만, 적어도 번역 또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술의 후보에도 이르지 못하고 자격 미달로 탈락시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은 해볼 수 있을 듯하다.

 

 

호프 자런, 『랩걸』 (김희정 번역가), p.p. 352-353

  콧물을 닦은 손을 이끼에 문지르기 위해 손을 뻗은 나는 이끼 낀 땅이 너무도 부드럽고 폭신한 것에 놀랐다. 꿇고 있는 무릎이 이끼의 제일 위층을 눌러서 거의 들어가다시피 했고 그렇게 해서 쥐어짜진 물이 고여 바지를 적시고 있었다. 나는 다시 몸을 굽혀 이끼를 한 줌 뜯어서 두 손으로 비벼 우리가 보통 말하듯 “씻어서 더럽게 만들”어 봤다. 손에 붙은 찌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그만 깃털처럼 생긴 것들이 보였다. 위쪽은 진한 황록색, 아래쪽은 옅은 황록색, 가장자리 일부에는 희미한 붉은빛이 줄무늬처럼 들어가 있었다. 구름을 올려다보면서 나는 그 조그만 것에 희미하긴 했지만 햇살에 들어 있는 모든 색이 다 들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가랑비처럼 오던 비는 이제 하늘에서 줄줄 물이 새는 듯한 장대비로 굵어져 있었다. 일어서면서 나는 냉기가 다리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 뼛속까지 스미는 것을 느꼈다. 털로 짠 내복 안쪽으로 물이 다리를 타고 흘러내려 양말 위쪽부터 젖고 있었다. 이 나라를 떠날 때까지는 완전히 마른 옷을 다시는 입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온몸이 젖어 추위에 떨면서 진흙탕에서 헤맬 때면 주변의 식물들은 그 비참한 날씨를 그냥 견디는 정도가 아니라 그 속에서 번창하고 있는 자신들의 우월성을 뽐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 네가 이렇게 거지 같은 날씨 좋아하는 거 알아.” 나는 앞에 있는 한 줌의 이끼에게 그렇게 비웃듯 말하고 작은 언덕처럼 올라온 그 이끼 더미를 콱 밟았다. 완전히 상관도 없는 다른 일에 기분이 상했는데 뭔지는 콕 집어 말할 수 없어서 엉뚱한 곳에 화를 내는 버릇없는 아이처럼. 내게 밟힌 이끼는 털끝 하나도 상하지 않고 아래로 푹 꺼져서 깨끗하고 투명하게 고인 물웅덩이 밑으로 사라졌다가 내가 발을 치우자 용수철처럼 다시 튀어 올라왔다. 심지어 내 발자국의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다시 한 번 발로 밟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발로 차봤지만 역시 마찬가지 결과였다.

  “리버댄스(아일랜드 전통 무용 - 옮긴이) 추는 거야?” 몸을 돌린 빌이 나에게 무표정한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25밀리리터 시험관 가지고 있어?” 내가 물었다.

  “300밀리리터짜리밖에 없는데?” 그가 대답했다. “대부분 숙소에 있는 회색 더플백 안에 있어.”

  “있잖아… 이 녀석들, 훨씬 아래쪽에 사는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통통하고 행복해 보이잖아….”

나는 이끼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빌은 즉시 내 말을 알아듣고 매듭지어줬다. “…아래쪽이 강바닥에 더 가까우니 물이 훨씬 더 풍부할 텐데도.”

  “살아 있는 아기 기저귀야.”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발을 눌렀다 뗐다 하면서 그 식물을 누르면 물이 웅덩이를 이뤘다가 다시 흡수되는 것을 빌에게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