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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야기] 16. 번역가의 척추를 부탁해 ① - 모니터&모니터 암

번역은 [...]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고된 중노동이다.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육체적으로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결코 고상하고 우아하고 느긋하게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서계인) 저는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공부하는 자세가 매우매우 안 좋았는데요, 그래서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척추 관련 질환을 달고 살았었습니다. 항상 고개를 90도로 푹 숙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던 탓에 목 근육이 경직돼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편두통이 찾아왔고, 허리가 아파서 카페에서 다섯 시간만 서서 일하고 나면 출근길에 버스를 기다리면서 차도 경계석에 앉아 쉬어야 했죠. 바깥 활동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우선 침대에 누워서 허리 찜질을 30분씩 해야 비로소 책상에 앉을 수 있었던 것도 일상이었습니다. 목과 허리 건강이 갈수록 ..

[번역 이야기] 15. 슐라이어마허의 '말 잡아 당기기'

근대 철학사에 불후의 업적을 남긴 신학자이자 철학자, 그리고 해석학자였던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는 '번역은 저자를 독자에게 데려가거나 독자를 저자에게 데려가는 일이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의 번역론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하는데요, 슐라이어마허의 번역론에는 굉장히 재미있는 구석이 있어서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슐라이어마허가 번역을 '저자와 독자가 중간지대에서 만나도록 도와주는 행위'라고 정의하지 않고 어느 한 쪽을 다른 한 쪽에게 데려갈지 양자택일 하는 행위라고 이야기한 배경을 설명해야 할 것 같아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저자가 사용하는 언어와 독자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A라는 사물을 지칭하는 단어가 저자의..

[번역 이야기] 14.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③ (세미콜론)

(이전글) [번역 이야기] 12.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① https://ssjstudylog.tistory.com/62 [번역 이야기] 12.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① 원문에는 곳곳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항상 시선이 타성적으로 문장을 훑지 않도록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두드리면서 건너야 합니다. 일전에 저는 'haven(피난처)'이라고 쓰인 것 ssjstudylog.tistory.com [번역 이야기] 13.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② (콜론) https://ssjstudylog.tistory.com/63 [번역 이야기] 13.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② (콜론) 앞선 포스트에서 콜론은 '설명'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콜..

[번역 이야기] 13.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② (콜론)

(이전 글) [번역 이야기] 12.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① https://ssjstudylog.tistory.com/62 [번역 이야기] 12.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① 원문에는 곳곳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항상 시선이 타성적으로 문장을 훑지 않도록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두드리면서 건너야 합니다. 일전에 저는 'haven(피난처)'이라고 쓰인 것 ssjstudylog.tistory.com 앞선 포스트에서 콜론은 '설명'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콜론을 사용함으로써 어떻게 설명하는 효과가 나타나는지 여러 예문을 가지고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펭귄 출판사에서 나온 구두점 사용법 가이드(Trask R. L., 『The Penguin Guide To ..

[번역 이야기] 12. 구두점의 번역 - 콜론과 세미콜론 ①

원문에는 곳곳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항상 시선이 타성적으로 문장을 훑지 않도록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두드리면서 건너야 합니다. 일전에 저는 'haven(피난처)'이라고 쓰인 것이 'heaven'의 오자인 줄 알고 '천국'으로 번역해버린 적이 있었는데요, 문맥상 천국으로 번역해 놓아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어서 번역문만 보고 검토할 때 오역을 찾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 영어 어휘력을 반성하게 된 순간이었지만, 왜 'e'가 빠진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반성하고 또 반성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원문에는 알파벳 한 글자보다 더 자그마한 복병이 있습니다. 바로 구두점입니다. 앞에서 저는 'haven'을 보고 안일하게 '내가 아는 단어'라고 생각하고 그 의미를 고민하지 않았는데..

[번역 이야기] 11. 번역가가 작가가 되는 순간! ② - 책 제목 번역 꿀팁 모음

(이전글) https://ssjstudylog.tistory.com/59 [번역 이야기] 10. 번역가가 작가가 되는 순간! ① - 책 제목 번역하기 출판사에서는 국내에 새로운 외서를 소개하기 위해 판권 계약을 하기 전에 번역가에게 리뷰를 부탁합니다. 원서를 한 번 읽어보고 그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팔릴 만한 책인지 그렇지 ssjstudylog.tistory.com 우선 제목에 어떤 유형들이 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김학원 편집자는 제목이 여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제목의 여섯 가지 유형은 다음과 같다. '명사'형 (토지, 객지, 아리랑, 연어) '명사+명사'형 (노인과 바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이성과 광기) '형용사+명사'형 (외딴 방, 슬픈 열대, 하얀 전쟁) ..

[번역 이야기] 10. 번역가가 작가가 되는 순간! ① - 책 제목 번역의 재미와 어려움

출판사에서는 국내에 새로운 외서를 소개하기 위해 판권 계약을 하기 전에 번역가에게 리뷰를 부탁합니다. 원서를 한 번 읽어보고 그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팔릴 만한 책인지 그렇지 않은지, 국내에 소개한다면 어떤 독자들을 겨냥해서 마케팅을 하면 좋겠는지 등등 여러가지 의견을 묻죠. 여기에는 '책 제목을 어떻게 정하면 좋겠는지'도 포함됩니다. 제가 여태까지 검토했던 책들 중에는 본문 내용은 너무 재미있는데 원제가 밋밋하고 재미없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책들을 만날 때면 저는 쾌재를 부릅니다. 항상 저자가 한 말을 '받들면서' 저자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는 제가 이 순간만큼은 그 한계를 뻥 걷어차버리고 마치 작가가 된 것처럼 마음껏 창작의 열정을 불태워 제목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책에 원제..

[번역 이야기] 09. 역자 후기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할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나오자마자 번역을 하고 싶었는데 어떠어떠한 사정으로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어쩌다 기회가 생겨서 번역을 하게 되었고 번역하는 동안 힘이 되어준 배우자와 아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등의 사적인 이야기들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역자후기를 싫어하는 편입니다. 역자후기, 혹은 옮긴이의 말은 본문의 내용에 누가 되지 않을 만큼의 품위와 무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무 감동도 재미도 영양가도 없는 메모가 툭 하고 등장하는 게 몰입을 확 깨기 때문이지요. 가급적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저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오롯이 집중되도록 해야 하는 번역가가 느닷없이 깜짝 등장하는 것도 별로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여기까지는 저도 한 명의 독자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만, "그러면 너는 책을 번역하고 ..

[번역 이야기] 08. 저자와 독자를 알기 위한 노력

보편 해석학을 창시하면서 번역 이론에서 걸출한 업적을 남기고 그 자신도 기라성 같은 번역가였던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는 번역가가 독자를 저자에게 데리고 가거나 저자를 독자에게 데리고 가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말은 '직역이냐 의역이냐'는 해묵은 논쟁을 대변하는 말로 흔히 이해되어 왔는데요, '직역이냐 의역이냐' 하는 문제로 슐라이어마허의 이 말을 끌고 들어가기에 앞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저자가 누구고 독자가 누구냐 하는 문제이지요. 저자가 누구고 독자가 누군지를 명확히 알아야 저자를 독자에게 제대로 데려갈 수 있고 독자를 저자에게 제대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포스트에서는 직역과 의역 사이의 논쟁에 관해 다루기에 앞서, 저..

[번역 이야기] 07. AI는 인간 번역가를 대체하게 될까? (2) - 기계 번역의 미래와 인간 번역의 미래

과연 기계번역은 이렇게 언어의 불완전성을 메우는 읽기를 하고, 이에 기반해서 번역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정영목 번역가는 오늘날 기계번역이 거두고 있는 성공이 이러한 '창조적 독해'를 포기함으로써 가능해졌다고 지적합니다. 기계번역에는 물론 읽기가 없다. 아니, 읽기가 사라졌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RMT(Rule Based Machine Translation) 시절에만 해도 마치 외국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구문 분석을 하는 등 인간의 읽기와 비슷한 요소가 어느 정도 있었으나, SMT(Statistical Machine Translation)를 거쳐 NMT(Neural Machine Translation)로 오면서 읽기, 적어도 인간적인 읽기의 요소는 사라져버렸다. 어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