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나/번역 이야기

[번역 이야기] 06. AI는 인간 번역가를 대체하게 될까? (1) - 번역은 '복제'인가 '창조'인가

서서재 2021. 7. 6. 20:05

요즘은 단순 정보 전달 위주의 웹사이트 번역은 구글번역기를 돌려도 굉장히 자연스러운 편이더라구요. 파파고에 문장을 넣어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출력해줘서 놀랄 때가 많습니다. 이러다 정말 AI가 번역가를 대체하는 날이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죠.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위기감을 느끼는 분야는 한둘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번역계와 번역가가 느끼는 긴장감은 남다르다고 생각됩니다.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었던 언어라는 성역聖域마저 컴퓨터에게 빼앗기게 된다면 더이상 인간이 지성적 존재로서의 '최고 존엄'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들죠.

 

과연 인공지능은 점점 더 자연스러운 번역문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인간 번역가를 대체하게 될까요? 아니면 인공지능이 결국 넘어설 수 없는 벽에 직면해서 번역가의 밥그릇이 지켜질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하여 상당한 통찰을 제공하는 텍스트가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제가 좋아하는 정영목 번역가의 글인데요, 오늘은 정영목 번역가의 저서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에 실린 「읽기로서의 번역」이라는 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먼저 정영목 번역가는 번역이라는 작업이 본질적으로 '기계적'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번역은 "다른 언어로 같은 내용을 재현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번역의 이상은 '창조'가 아니라 '복제'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이는 번역에 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굉장히 일반적인 관점입니다. 번역가를 타인의 글을 옮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작가보다 한 단계 낮은 자리에 두곤 하는 것도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죠. 기계번역이 인간번역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이미 모든 게 주어져 있다는 사고, 원문 텍스트는 완결되고 고정된 실체라고 가정하는 사고, 그 안에 고정되어 있는 의미를 건져서 다른 언어의 외피를 씌우겠다는 사고가 들어서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번역을 둘러싼 모든 기계적 발상, 또 기계번역의 토대가 되는 발상이다.

 

하지만 번역이 과연 이미 외국어로 쓰인 글을 언어만 바꿔서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수동적인 작업이기만 할까요? 앞서 번역이 기계적이고 복제에 가까운 측면이 있다고 인정한 정영목 번역가는 이번에는 번역이 가진 인간적이고 창조적인 측면을 환기시킵니다.

반대로 텍스트가 열려 있을 뿐 아니라 그 기초에는 언어의 불완전성이 자리잡고 있으며, 번역 언어가 그 불완전성을 그 나름으로 보완하면서 원래의 언어와 더불어 새로운 언어로 나아간다는 벤야민 같은 발상이 있다. (정영목,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읽기로서의 번역」 中)

 

여기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하는 부분은 첫째로 '인간의 언어가 불완전하다'는 것이고, 둘째로 '그래서 번역은 그 불완전성을 보완하는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언어가 불완전하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작가가 어떤 인물의 얼굴이 둥글다고 했을 때 이 둥근 얼굴이 동그스름한 얼굴인지 둥글넓적한 얼굴인지는 알 수 없다. 가령 동그스름한 쪽으로 간다고 해보자. 그러나 동그스름한 얼굴이라는 말도 해상도가 낮은 표현이다. 동그스름한 얼굴도 엄청나게 다양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묘사를 잘한다 해도 말로는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언어는 성긴 것이고, 그 빈 부분은 읽는 사람이 상상력으로 채워넣어야 한다.

 

인간의 언어가 성기기 때문에 언어가 미처 다 전달하지 못하는 부분은 읽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지게 됩니다. 언어가 담아내는 현실은 8K 해상도로 찍은 사진보다는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거기에서 더 선명하게 이해하려면 읽는 사람의 배경지식과 경험과 상상력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사람마다 원문을 다르게 이해하는 결과가 발생하게 되죠.) 이를 고지식하게 표현하자면 '언어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창조적 독해의 여지가 생긴다'고 할 수 있겠네요.

 

실상이 이렇기 때문에 번역은 단순히 베껴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에 부족한 내용을 채워넣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언어가 성기다는 특징 때문에 번역가가 창조를 할 여지가 많아지는 것은 중국어 번역을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김택규 번역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어 번역은 상대적으로 속도가 늦다. 이것은 한자가 표의문자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자 1,000자를 번역하면 한글 1,800자가 된다. 일본어와 영어도 번역하고 나면 글자 수가 더 늘지만 중국어만큼 많이 늘지는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더 늘어나는 분량만큼 중국어 번역가는 더 많이, 생짜로 글을 '지어내야' 한다. 이렇게 창작성이 강하기 때문에 중국어 번역은 느리기 짝이 없다. (김택규, 『번역가 K가 사는 법』,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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