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나/번역 이야기

[번역 이야기] 04. 번역가의 시간 관리

서서재 2021. 7. 5. 12:48

직장인과 달리 프리랜서인 번역가는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기 때문에 직장인보다 '자유롭다'고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많은 선배 번역가들은 번역가도 직장인처럼 정해진 일정에 따라 작업을 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놀고 싶을 때 노는 것은 번역가로서의 단명을 재촉하는 일이라는 것이죠. 꾸준하게 일정한 퀄리티의 번역문을 매일같이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규격화된 일상을 보내야 한다고 합니다. 번역가로 성공하려면 정말 자기관리의 달인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글나눔에서는 선배 번역가들이 시간 관리를 하는 방법, 매일매일의 노동에 임하는 자세가 어떠한지 살펴볼 수 있는 글들을 모아봤습니다. 

 

이종인, 『번역은 글쓰기다』 中

번역은 손가락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 번역을 하려면 책상에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그래야 원문을 하나라도 더 들여다보고 한 페이지라도 더 번역을 하게 된다.

기분이 내키면 번역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놀거나 술 마시는 생활을 해서는 결코 프로라고 할 수 없다. 회사에 출근하는 것처럼 규칙적이고도 지속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번역가로서 신뢰가 쌓이고 오랜 세월 많은 양의 번역을 해낼 수 있다. 세상에 번역해야 할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을 내팽개치고 다른 데 가서 위안거리를 찾으려고 하는가.

평일에 8시간은 무조건 작업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직장인이 회사에 출근하면 웬만한 일로는 직장을 떠나는 법이 없듯이, 번역가도 하루 8시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8시간 이상 작업을 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데, 너무 오랜시간을 작업하는 것은 우선 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설혹 하더라도 품질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고명섭, 「번역출판의 질은 왜 개선되지 않는가」, 『번역출판』 p.p.69~70

김석희(56) 씨는 지금까지 번역한 책이 150종, 200권 남짓 되는데, 그 가운데 50퍼센트가 일본어 책, 30퍼센트가 영어 책, 나머지 20퍼센트 가량이 프랑스어 책이다. (...) 그는 20년 가까이 '8 · 8 · 8'의 생활수칙을 지키고 있다. 하루를 셋으로 나눠 8시간은 잠을 자고 8시간은 쉬고 8시간은 책상 앞에 앉아 번역 일을 한다. "번역이란 게 자기관리 못하면 무너지는 일이다. 나에게 번역은 직업이다. 8시간 노동제를 어떻게든 지키려 한다."

 

 

김택규, 『번역가 K가 사는 법』, p.p.153~158

나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난다. 다른 식구들이 깨지 않게 조심스레 거실에 나가 식사를 하고 108배(말이 108배지 2, 30배를 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하루라도 빼먹으면 몸이 찌부드드하다)를 한 뒤, 집 앞에서 5시 20분 첫 버스를 타고 역 근처 24시 카페베네에 간다. 그리고 정확히 6시에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 그렇게 정오까지 번역을 하고서 카페를 나와 식사를 한 후 다시 카페로 돌아와 오후 대여섯 시까지 또 번역을 하고 나서야 집에 돌아간다. 저녁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밥을 먹고,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강아지 두 마리와 놀아주고서 바로 잠자리에 든다. 이르면 9시, 늦어도 10시에는 잠을 자려고 한다. 

불가피한 약속이 있을 때는 일과 시간을 조정한다. 내게 사적인 약속은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다. 그리고 모든 약속은 부담스럽지 않은 시간에 마무리한다. 밤 열 시를 넘기지 않고 술은 자제한다. 다음날 일과에 영향이 가기 때문이다. 늦게 귀가해 12시를 넘겨 잠자리에 들면 다음 날 4시 기상이 거의 불가능하다. 

출판번역가는 기계다. 미리 입력된 기본 스케줄을 철저히 엄수하고 피치 못할 변동이 생기면 그때그때 스케줄을 적절히 조정함으로써 일상의 리듬이 깨지는 일이 없게 한다. 이런 기계적 스케줄에 대한 맹종과 끊임없는 조정을 통한 리듬의 유지로 생활을 지탱한다. 

 

 

김우열, 『나도 번역 한번 해 볼까?』

번역가 G는 다섯 시쯤 일어납니다. 씻고 가볍게 아침을 먹고 운동하러 다녀오면 여덟 시 정도 됩니다. 이때부터 일을 시작해서 오후 다섯 시 정도까지 번역합니다. 그 후에는 저녁을 먹고 책을 읽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다른 일을 합니다. 

번역가 M은 새벽에 일어납니다. 몇 시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일찍 일어나 작업을 시작합니다. 굉장히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때때로 강의도 합니다. 순수하게 일하는 시간만 계산하면 직장인의 배는 되는 것 같네요.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 시간을 잘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시간표를 짜서 각자 자신의 일정을 관리하기 때문이지요. 일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허겁지겁 해치우고 없으면 노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일정 분량을 소화하도록 자신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p.p.86~87)

 

 

김은경, 「인터뷰 3 - 번역가 양억관」, 『번역출판』, p.192

김은경 ― 하루에 몇 시간 정도 번역을 하세요?

양억관 ― 9시 반에 출근하면 3시간 정도, 점심 때까지 최소한 원고지 50매 정도 합니다. 한 달에 원고지 1,000매 이상. 적어도 한 권은 하는 거죠.

 

 

김고명,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 p.p.47~50

[뽀모도로 기법(Pomodoro Technique)은 시간 관리 방법론으로 1980년대 후반 '프란체스코 시릴로(Francesco Cirillo)'가 제안했다. 타이머를 이용해서 25분간 집중해서 일한 다음 5분간 휴식하는 방식이다. '뽀모도로'는 이탈리아어로 토마토를 뜻한다.]

저한테는 이만큼 효과적인 작업 방식이 없는 것 같아요. 그 장점을 말해보자면요, 일단 만만합니다. 25분 집중하는 것은 훨씬 마음이 가볍습니다. 이렇게 25분 단위로 끊어서 일하면 총 작업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일하는지 정확히 알면 날마다 총 작업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쉬워집니다. 막연히 9시부터 6시까지 앉아 있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매일 25분씩 15탕을 뛰겠다고 좀 더 세밀하게 목표를 세울 수 있고, 실제로 그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면 매일 꾸준히 일정량의 작업물을 생산하게 되죠. 

꾸준함을 유지하려면 하루 동안 일한 시간만이 아니라 번 돈을 기록해두는 것도 좋습니다. 오늘 생산한 번역 원고가 몇 장인지 알면 얼마나 소득을 올렸는지도 알 수 있거든요. (p.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