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나/번역 이야기

[번역 이야기] 05. 메이지기 일본의 서양어 번역 - '경제, 사회, 자유'를 중심으로

서서재 2021. 7. 5. 14:35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개념어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예를 들면, [철학]이나 [민주주의] 같은 단어는 처음부터 우리 땅에서 사용되던 단어가 아니라 일본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만들어낸 단어들이었죠. 그러한 점에서 이 단어들에는 일본이 근대성을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일본의 발명품이었음에도 동아시아에서 모두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은 한자를 활용해 번역한 덕분이었죠. 

 

이번 포스트에서는 '경제', '사회', '자유'라는 중요한 개념들이 번역된 역사를 살펴보려고 하는데,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에서도 50~80년의 세월동안 하나의 서양어에 대응되는 번역어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번역어가 난립하고 경쟁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번역어가 하루아침에 누군가에 의해서 짠 하고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아래의 본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번역어가 학문적 토론과 치열한 사유 끝에 만들어지기보다는 누가 먼저 대중적인 매체(대학 학과명이나 대중 교양서의 제목)를 '선점'해서 성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자유'라는 번역어가 그렇죠. 자유는 원래 동아시아에서 '제 멋대로 하다, 방종하다'는 의미로 사용되던 단어였는데 J. S. 밀의 'On Liberty'가 『자유지리』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출간되면서 단번에 liberty/freedom에 대응되는 번역어로 올라섰다고 합니다. 흥미롭죠?

 

어쨌거나  주요 개념어가 번역된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시선이 담긴 새로운 번역어를 만드는 데에도 좋은 밑바탕을 제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고문헌

  • 최경옥, 메이지기 일본의 서양어 번역 - [economy]가 [경제]로 번역되기까지 (통번역교육연구 2009년 가을 제7권 2호)
  • 최경옥, 메이지 번역어 성립에 관하여 - 자유 · 사회를 중심으로 (통번역교육연구 2006년 봄 제4권 1호)

 

 

▲ 경제

 

번역어 [경제]의 탄생에는 津田眞道와 神田孝平가 기여한 바가 크다. 번역어 [經濟]는 동양사회에서 1862년 일본에서 최초로 번역어가 나타나기 이전부터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던 단어였다. 1867년 일본 최초의 서양 경제서적 번역서인 『경제소학(經濟小學)』이 출간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가진 번역어로서 위상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경제]라는 번역어가 [economy]의 번역어로 유일하게 만들어진 번역어는 아니었다. 1870년대 후반부터 [economy]의 번역어로 [경제]가 적절한가하는 의문이 대두되면서 [이재理財]가 [economy]의 번역어로 유력하게 떠오른다. 1880년대까지 [경제]와 [이재]는 [economy]의 번역어로 병용되어 사용되었고, 이러한 상황은 1890년 이전까지 계속된다. 

 

그러다가 1890년대에 들어서자, 다시 [경제]가 [이재]를 누르고 [economy]의 번역어로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경제]의 정착에는 국립대학의 학과명이나 학과목명의 변경이 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economy]의 번역어 정착 과정이 복잡하게 전개된 것은, 메이지기 일본이 [economy]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결국 자유주의 경제학을 주창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메이지기 일본에서 서양경제학의 주류로 등장하면 [이재]라는 번역어가 강세를 띠었고, 국가주도의 경제학 경향이 주류로 등장하면 역사학파 경제학의 성격을 가진 [경제]가 강세를 띠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메이지기 일본에서 [economy]의 번역은, 단순히 서양의 상업적인 자본주의를 받아들려는 것에 목표가 있었다기 보다는, 국가 발전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와 걸맞는 서양 자본주의를 정수를 받아들이려는 것에 더 큰 목표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자유

 

[자유]라는 말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개화 훨씬 이전부터 사용하던 단어였다. 메이지기 이전의 일본에서는 '제멋대로'라는 의미로 사용된 [자유]가 많은데,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유]라는 단어에 대하여 처음에는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freedom이나 liberty의 번역어로 [자유]를 대체할 만한 단어를 찾는 것도 당시로서는 녹록지 않았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1870년 『서양사정 2편』에서 freedom/liberty의 번역어로 [자유]는 적절하지 못하지만, 다른 번역어도 완벽하게 원의를 전달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자주(自主), 자재(自在), 불기(不羈), 관홍(寬弘) 등 다양한 번역어가 등장한다. 

 

그러던 와중 1872년 나카무라 마사나오가 J. S. 밀의 『On Liberty』를 『자유지리(自由之理)』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출간한다. 이 책이 출판되면서 [자유]는 느닷없이 다른 경쟁어들을 제치고 freedom/liberty의 번역어로 확고한 입지를 다지게 된다. 

 

이는 여러 번역어가 난립하는 과정에서 최후까지 살아남는 번역어가 반드시 가장 잘 번역된, 완성도 높은 번역어는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사회

 

[사회]는 메이지기 이전부터 사용되던 단어로, 원래 "제사를 같이 지내는 공동체"의 의미로 사용되었었다. 

 

일본에 처음으로 [society]라는 말이 소개된 것은 1796년 네덜란드-일본어사전에서였는데, 여기에는 [society]가 [교제하다/모이다]로 번역되어 있다. 이후 1850년대 출판된 네덜란드-일본어 사전에서는 [모임/집합]이라는 번역어를 수록하고 있다. 한편 후쿠자와 유키치는 1868년 『서양사정외편』에서 society를 [인간교제/국가/세인]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의 단어에 대응하는 번역어가 여러 개 난립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에 society에 대응하는 현실이 없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일본에서 society의 번역어로 [사회]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870년대 중반경으로 추정된다. 메이로쿠샤의 동인들이 창간하여 문명개화시기의 일본에 큰 영향을 끼친 『메이로쿠 잡지』 30호에서 모리아리노리가 '사회'라는 말을 쓰고 있으며, 후쿠자와 유키치 또한 1876년에 들어서는 [society]의 번역어로 '사회'를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