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나/번역 이야기

[번역 이야기] 19. 『채식주의자』 번역에서 우리가 배우지 말아야 할 것 ① - 원문을 대하는 태도

서서재 2021. 7. 15. 02:57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영미권에서 뜨거운 찬사를 받으며 상까지 받았지만 정작 그 영어 번역본은 오역 투성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번역가인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는 한강 작가와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며 번역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어째서 이렇게 오역 시비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참 아이러니합니다. 

 

과연 어느 부분이 잘못 번역된 것일까요? 이에 관해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코멘트를 남겨 놓았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문학동네』에 실린 조재룡 교수의 비평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이 비평을 가져온 이유는 우선 조재룡 교수가 개별적인 단어나 표현의 오역을 시시콜콜하게 꼬집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채식주의자』 영어본의 오역은 기본적으로 번역가의 한국어 실력이 번역을 할만큼 출중하지 못했던 데에서 비롯된 것이 크지만, 번역가로서 원문과 원문에 담긴 문화를 대하는 자세가 지극히 아마추어적이었던 데서 비롯되기도 했습니다. 조 교수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요, 그는 『채식주의자』의 영어 번역본과 프랑스어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번역문의 행간에 감춰진 번역가의 번역 태도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태도란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됩니다. 하나는 원문을 대하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원문에 담긴 문화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이 중 첫 번째, 원문을 대하는 태도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번역이라는 한 배를 탄 입장으로서 다른 번역가의 오역을 지적하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을 타산지석 삼아 우리의 번역하는 자세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훈 1. 원문에 쓰인 것들을 힘 닿는 데까지 보존하여 번역해야 한다.

 

먼저 한강 작가의 원문을 읽어 보겠습니다. 

 

말문이 막혔다. 요즘 채식 열풍이 분다는 것쯤은 나도 보고 들은 것이 있으니 알고 있었다. 건강하게 오래 살 생각으로, 알레르기니 아토피니 하는 체질을 바꾸려고, 혹은 환경을 보호하려고 사람들은 채식주의자가 된다. 물론, 절에 들어간 스님들이야 살생을 않겠다는 대의가 있겠지만,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가. 살을 빼겠다는 것도 아니고, 병을 고치려는 것도 아니고, 무슨 귀신에 씐 것도 아니고, 악몽 한번 꾸고는 식습관을 바꾸다니. 남편의 만류 따위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 저 고집스러움이라니. (한강, 『채식주의자』, 창비, 2007, 21쪽)

 

이 문단이 영역본에서는 어떻게 번역되었을까요?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과 조재룡 교수가 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을 같이 놓고 보겠습니다. 

 

I was lost for words, though at the same time I was aware that choosing a vegetarian diet wasn’t quite so rare as it had been in the past. People turn vegetarian for all sorts of reasons: to try and alter their genetic predisposition towards certain allergies, for example, or else because it’s seen as more environmentally friendly not to eat meat. Of course, Buddhist priests who have taken certain vows are morally obliged not to participate in the destruction of life, but surely not even impressionable young girls take it quite that far. As far as I was concerned, the only reasonable grounds for altering one’s eating habits were the desire to lose weight, an attempt to alleviate certain physical ailments, being possessed by an evil spirit, or having your sleep disturbed by indigestion. In any other case, it was nothing but sheer obstinacy for a wife to go against her husband’s wishes as mine had done. (Han Kang, The Vegetarian, translated by Deborah Smith, Portobello Books, 2015, p. 14.)

나는 할말을 찾지 못했고, 이와 동시에 채식을 선택하는 일이 과거에 그랬듯 아주 드문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오만 가지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된다: 예를 들어, 알레르기에 대한 유전적 성향을 바꿔보기 위해, 또 아니면 고기를 섭취하지 않는 것이 보다 환경친화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물론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맹세한 불교의 스님들은 도덕적으로 생명 파괴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의무를 갖고 있지만, 쉽사리 외부의 영향을 받곤 하는 어린 여자애들도 분명 그 정도까지 멀리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 어떤 사람의 식습관을 바꾸는 데 있어서 말이 되는 유일한 이유는 살을 빼고 싶다거나, 특정 신체의 질병을 완화해보려 하거나, 악령에 씌었거나, 소화불량으로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가 되었든, 남편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아내의 단순한 고집일 뿐이었다.

 

자세히 보면 원문과 번역문의 리듬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문 앞 부분에서 문장이 진행되는 방식을 보면 "막혔다. 알고 있었다. ~~~ 채식주의자가 된다."는 식으로, 이를테면 '단단장'의 리듬으로 글이 진행되지만, 번역문은 "찾지 못했고, ~~ 알고있었다. 채식주의자가 된다."는 '장-단'의 리듬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 교수는 이를 두고 "단문은 어지간해서 단문으로 되살아나지 않는다. (...) 번역가의 주관에 따라, 원문의 길이가 조절되거나, 그 사이, 무언가가 첨가되거나, 단문이 복문으로 변화를 꾀한다."라고 말하며, 원문과의 대조가 무의미할 정도로 원문에서 이탈해버린 번역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한국어와 영어의 구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문제였을까요? 조 교수는 한 가지 모범 사례로서 『채식주의자』의 프랑스어 번역본을 함께 인용해서 보여주고 있는데요, 확실히 프랑스어 번역본(의 한국어 번역본)을 보면 훨씬 원문에 가까운 번역이 이루어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Je suis resté sans voix. Je savais, pour en avoir entendu parler, que le ré gime vé gé tarien é tait à la mode. Les gens l’adoptaient pour jouir d’une bonne santé aussi longtemps que possible, pour se dé barrasser d’une allergie ou de problè mes dermatologiques, ou encore dans le souci de pré server l’environnement. Pour les moines bouddhistes, c’é tait par respect du grand principe qui leur interdit de tuer. Mais dans son cas, à quoi cela rimait? Cen’é tait pourtant plus une adolescente! Ce n’é tait pas pour maigrir, ni pour gué rir d’une maladie; elle n’é tait pas non plus possé dé e par je ne sais quelesprit. Elle voulait changer son ré gime alimentaire à la suite d’un cauchemar! Etelle s’entê tait, indiffé rente aux efforts de son mari pour l’en dissuader. (Han Kang, La Vé gé tarienne, traduit par Jeong Eun-Jin & Jacques Batilliot, Le Serpent à Plumes, 2015, pp. 21~22.) 

나는 말문이 막혔다. 채식이 유행이라는 사실을 나도 보고 들은 바 있어 알고 있었다. 가능한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희구하며 알레르기니 피부병 문제니 하는 것을 없애보려, 혹은 환경보호에 대한 염려로 사람들은 채식주의자가 된다. 불교의 스님들이야 살생을 않겠다는 대의 존중으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 이게 무슨 짓인가? 더는 사춘기 소녀가 아니지 않은가! 살을 빼겠다는 것도 아니고, 병을 고치려는 것도 아니었다; 이상한 혼령에 사로잡힌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악몽 한 번으로 식습관을 바꾸려 했다! 그녀를 만류하는 남편의 노력 따위에는 무관심한 채,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이 번역을 두고 조 교수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요, 그는 프랑스어 번역본에서는 번역가가 함부로 텍스트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평가하며, "한국어 원문을 존중하고 특수성을 잘 살려 한 구절 한 구절 프랑스어로 옮겨보려는 시도"를 한 데에서 벌써 번역가의 실력이 다르다는 것이 드러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 번역을 우리는 매우 ‘창의적인’ 번역이라고 불러야 한다. (...) 한국어 원문의 특성과 구조, 어휘를, 최대한 정확히, 한국어와 상당히 다른 특성과 구조와 어휘로 이루어진 프랑스어로 살려내려는 시도 자체가 창의적인 재능과 언어에 대한 수준 높은 지식, 치열한 노력 없이는 가능하지않기 때문이다.

 

번역가들 중에는 '한 문장은 한 문장으로 번역한다'는 원칙을 절대적으로 고수하는 번역가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 문장=한 문장' 원칙이 지나치게 경직된 번역 자세를 낳는다고 여기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문장을 자르고 붙여야 한다고 여기는 번역가도 있습니다. 이는 오래된 논쟁이고 취향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위의 경우에는 함부로 자신의 번역 실력을 과신하여 원문을 짜깁기하기보다 겸손한 자세로 원문의 문장 구조를 존중한 쪽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은 것 같습니다. 

 

번역할 때 원문의 목소리를 함부로 자기 목소리로 바꾸어 번역하지 않고, 원문을 함부로 편집하지 않는 것. 그리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원문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여기에서 얻어야 할 첫 번째 교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번역가가 문화를 대하는 태도에서 어떤 차이가 발생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