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나/번역 이야기

[번역 이야기] 22. 글 잘 쓰는 번역가가 되려면 - 블로그 포스팅을 위한 조언 (혹은 다짐) ②

서서재 2021. 7. 20. 16:37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번역 이야기] 21. 글 쓰는 번역가가 되려면 - 블로그 포스팅을 위한 조언 ①

번역을 잘하려면 삼박자가 고루 갖춰져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외국어 실력이고, 다른 하나는 배경 지식,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바로 한국어 실력입니다. 흔히들 외국어 실력이 가장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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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단 글을 쓰는 것이 글을 잘 쓰는 것보다 먼저라고 하더라도 순백의 문서 작성 화면이 주는 압박감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글'인데 신변잡기식 일기나 메모처럼 쓰는 것은 어쩐지 성에 차지 않고 글쓰기 연습에도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해답의 실마리를 이번에도 같은 책, 『문장의 일』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윌리엄 워즈워스의 유명한 소네트 한 구절을 보자. "수도자는 비좁은 수도원 방을 싫다 하지 않고, 은둔자는 좁디좁은 독방에 불평하지 않으며, 학자는 고독에 잠긴 성채를 마다하지 않는다." 워즈워스가 하려는 말은 수도자와 은둔자와 학자가 하는 일(수도 생활과 명상과 공부)은 이들이 살고 있는 형식 구조의 제약으로 방해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과 성채로 비유되는) 구조는 자유의 폭을 제한해주기 때문에 (워즈워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나치게 큰 자유의 짐'을 덜어주기 때문에) 오히려 규정된 공간 내에서 일을 더 정확히 해낼 수 있어서다. (스탠리 피시, 『문장의 일』, 「3장. 생각(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p.56)

 

여기서 저자는 제약이 오히려 자유를 가져다주는 역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역설을 글쓰기에도 충분히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 형식과 제약 없이 백지를 마주하면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무엇부터 써야 할지 막막해지는데, 이는 생각을 교통정리 해 줄 가이드라인이나 형식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병목현상 같은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블로그에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그다음으로 해야 하는 일은 블로그에 '어떻게(어떤x)' 글을 써야겠다고 정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제 나름대로 블로그 포스팅의 원칙들을 세워보았습니다. 아직 포스팅 개수도 많지 않고 조회 수도 얼마 나오지 않는 블로그라 부끄럽지만, 그래도 앞으로 더 열심히 글을 올리자고 다짐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영감을 얻으실지도 모르는 미래의 방문객을 위해서 저의 블로그 작성 원칙/포맷을 공유해봅니다.

 


 

● 하나의 글에 한 개 이상의 인용문을 발췌하여 첨부한다. 

하늘에서 눈 결정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먼지 알갱이가 필요하듯, 타인의 글에서 발췌한 인용문은 한 편의 글을 쓰는 데에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용문을 씀으로써 여백을 오롯이 나의 목소리로만 채워야 한다는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고, 이미 열매를 맺은 타인의 글을 가져옴으로써 새로운 시선과 지식을 수혈받을 수도 있다. 글을 준비하기 전에 비슷한 주제의 인용문을 먼저 에버노트에 몇 문단 받아적는다. 그리고 인용문과 인용문 사이의 공백에 나의 글을 채워 넣으며 다리를 놓는다. 인용문의 내용은 인용문을 삽입하기 전이나 후에 나의 언어로 한 번씩 내용을 요약·정리하여 독자가 인용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돕고 인용문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 하나의 포스트 안에서 구획을 나누어 여러 개의 글을 병치하는 것은 가급적 지양한다. 

최대한 글이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하나의 논리적 흐름을 유지하면서 처음부터 마지막 부분까지 점차 논리를 심화해나갈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 그래야 글 쓰는 실력이 는다. 1, 2, 3 하는 식으로 문단 앞에 번호를 붙여 주제를 바꾸지 말고 하나의 논지와 시점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유지되면서 자연스럽고 유기적으로 글이 발전해나가도록 하는 연습을 한다. 글이 메모가 되지 않도록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 

 

● 독백체가 아니라 경어체를 사용하여 독자에게 말을 거는 형식으로 글을 쓴다. 

독백체로 글을 쓸수록 독자를 생각하지 않고 혼자서 넋두리를 늘어놓거나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펼치고 불친절하게 끝맺는 글을 쓰기 쉽다. 그렇게 될수록 블로그는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나만의 놀이터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경어체를 사용하여 블로그를 읽는 독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무슨 말을 해야 독자에게 유익하고 글을 읽는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지 유념한다. 

 

● 신변잡기식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서론 역할을 할만한 문단으로 포스트를 시작한다.

내가 메모가 아니라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서론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글이든 그 글이 시작되는 데에는 맥락이 존재하므로, 그 맥락을 독자가 파악하면서 글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올 수 있도록 서론을 마련한다. 서론을 쓰지 않으면 당장에는 글을 쓰기 쉽겠지만 결국 글이 자기 폐쇄적인 메모에 그치게 될 위험이 커진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스스로 전개하고 발전하고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며 고양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시작점, 곧 서론이 존재해야 한다. 

 

● 포스트의 제목 형식을 통일한다. 

블로그가 '짝 잃은 양말통' 같은 메모의 쓰레기통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제목을 통일할 필요가 있다. 일관성 있는 제목은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행위가 '연재'이기도 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는 글 쓰는 데에 약간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양질의 글을 계속 생산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블로그의 외관을 정갈하게 유지함으로써 방문자가 원하는 컨텐츠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그리고 아직 제대로 실천하고 있지 못한 것 하나...

 

●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전에 맞춤법 검사를 실시한다.

블로그에 글을 포스팅하는 것도 일종의 '자가 출판'에 해당한다는 생각으로, 포스팅하는 모든 글은 반드시 맞춤법 검사를 실시한다. 번역가를 자처하는 사람이면서 규범적으로 옳지 않은 표현을 버젓이 올리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글을 많이 쓸수록 맞춤법 검사도 많이 하게 될 테고, 내 글에 담긴 오류도 많이 확인하게 될 테니 자잘한 실수가 적은 글을 쓰는 데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