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철학과 기술 - 잡다한 실험들/읽기의 기술

#읽기의 기술 - 일차문헌을 꼭꼭씹어먹어 보자 (독서법, 포스트잇 사용법)

서서재 2019. 8. 18. 18:21

저는 책을 험하게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왠지 어떤 책에서 '제대로 뽕을 뽑으려면' 아이디어와 상념으로 가득한 메모와 밑줄, 형광펜으로 페이지를 빼곡하게 채워야만 할 것 같고, 그렇게 독서를 했을 때 만족감이 듭니다..ㅋㅋ 

 

이러한 욕망의 연장에서, 책을 읽을 때 포스트잇 또한 많이 붙이게 됩니다. 위의 사진에서처럼 전공서적의 경우에는 각각의 챕터를 항상 태그를 붙여 구분해놓는 편이고, 책 내용을 요약한 메모를 포스트잇에 적어놓기도 합니다. 

 

태그지를 빼곡하게 붙이며 책을 읽는 것은 상당히 보편적인 독서법이지만, 이번 포스트에서는 제가 독서를 해나가면서 나름대로 조금 더 규칙을 부여하고 발전시켜 본 태그 방법에 대해서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단순히 인상 깊은 내용이나 중요한 페이지를 빨리 찾기 위해 붙여놓는 태그가 아니라, 책 내용을 보다 분석적으로 파악하고 정리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태그법입니다:)

 

 

▲ 이 책은 제가 학부 2학년 때 정치철학 수업을 들으면서 읽었던 루소의 『사회계약론』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지금 소개하려고 하는 태그법이 가장 무르익었었고, 이렇게 읽고 난 뒤에 만들어낸 결과물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편이었기 때문에, 이 책으로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이 사진을 보시면 몇 가지 특징적인 점들이 눈에 띄실 텐데요. 1부부터 4부까지 챕터가 구분되어 있고, 포스트잇의 색깔도 구분되어있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포스트잇 위에 키워드 뿐 아니라 문장도 쓰여있는 점이 흥미로울 수도 있겠네요. 여기에서 가장 주목하셔야 할 부분은 바로 포스트잇이 종횡으로 나란히 정렬되어있다는 것, 그리고 같은 위치에 있는 포스트잇들이 내용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볼까요:) 

 

이 수업에서는 교수님이 학생들의 독해를 돕기 위해 '가이드 질문'을 미리 제공하셨었습니다. 수업 중반에 각각의 질문에 대해서 답을 써서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그래서 질문별로 답이 될 수 있는 내용들을 잘 파악하는 게 중요했죠. 그래서 가이드 질문을 뽑아놓고 책의 맨 앞 쪽에 붙여놓았습니다 (사진: 왼쪽).

 

그리고  매번 가이드 질문을 확인하기 위해 첫 페이지를 들추는 수고를 덜고자 각각의 가이드 질문의 테마를 포스트잇에 적은 다음, 같은 페이지의 뒷 장에 가지런히 붙여놓았습니다 (사진: 오른쪽).

  • 1부: 정의사회의 근본 원칙들 /정의사회의 입법과정 /정부의 다양한 기능 /사회조직들의 성격(종교 포함)
  • 2부: 주권자의 핵심 특징 / 일반의지와 전체 의지 / 주권자에의 제약 + 개인의 억압 방지 / 입법자의 특성과 기능 / 법률의 수용 태도
  • 3부+4부: 정부의 역할과 주권자와의 관계 / 정부의 유형 및 성공 가능성 / 사회 부패의 원인 /종교에 대한 우려

이렇게 테마들을 적어놓은 포스트잇을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참고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어떤 테마와 관련이 있는 내용은 이렇게 내용을 요약해서 같은 위치에 차곡차곡 쌓아나갔죠. 가장 첫 페이지에 붙여놓았던 포스트잇이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사회계약론』 독해에서 가장 쟁점적인 부분("루소는 공화주의자인가 전체주의자인가?")과 관련하여 "주권자에의 제약 + 개인의 억압 방지"라는 테마에 관해 태그해나가는 모습입니다. 사진에서는 이런 꼭지들을 모아가고 있네요 : "주권자가 파기 못할 법은 없다", "일반의지에의 복종은 강제된다", "공익에 한해 주권 행사", "목숨을 건 희생도 정당하다" 등등..

 

이 때 내용의 유형에 따라 포스트잇 색깔을 달리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론적인 설명은 파랑, 예시는 노랑, 평범한 것은 초록, 의문사항이나 나중에 따로 검색해봐야할 것은 주황, 매우 중요하거나 개인적으로 영감을 많이 주는 것들은 자홍 ..." 이런식으로요:)

 

이렇게 테마별로 위치를 정해놓고 포스트잇을 쌓아나감으로써 어떤 주제와 관련된 저자의 언급들을 잘 정리해놓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의 주제와 관점들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철학서를 읽다 보면 길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논거를 계열화하면서 읽는다면 조금 더 저자의 생각을 개괄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중에 글을 쓸 때 관련된 내용들을 인용하기도 쉽겠죠:) 

 

 


덧1)  참고로 이렇게 포스트잇에 내용을 더 많이 적는 것도 가능합니다.. (가로 쓰기 or 세로 쓰기) 

 

 

덧2) 이렇게 붙여놓은 포스트잇들을 테마별로 마인드맵으로 정리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사진: 책은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마인드맵 프로그램은 ThinkWise PQ Smart인데, 가격이 저렴하지 않은 편이어서 그때그때 필요할 때만 1달 단위로 구독해서 쓰고있습니다)

포스트잇들을 그대로 마인드맵에 옮겨놓으니 이런 모양으로 나오네요:) 

 

연관된 내용들을 묶어서 조금 더 정리한 모습입니다.

 

 

덧3) 음.. 이 부분은 조금 오바라는 생각도 들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포스트잇을 붙였을 때 활자가 많이 가려지는 것이 답답해서 항상 1cm 정도를 잘라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습니다.. 급하게 하다가 접착제가 있는 부분을 자르지 않게 조심하세요;; 

 

저는 이렇게 정리된 포스트잇을 플라스틱 케이스(클립통 재활용)에 붙여서 항상 가지고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