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논문읽기가 막막할 때 - Dict Box를 써보자!

부족한 독일어 실력을 가지고 대학수업을 독일어로 들었던 것은 어찌보면 만용이었다. 다음 수업까지 읽어가야하는 자료를 보면 문장마다 모르는 단어가 몇 개 씩 들어있었는데, 한 문장을 이해하는 데에 길게는 십 분 넘게 걸리기도 했었다. 

 

이렇게 열심히 단어를 찾았는데도 문장의 의미가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한장에 한두시간씩 걸려가며 한문장씩 일일이 한국어로 번역을 해보기도 했다. 더 어려운 글일수록 문맥에 의존해서 뜻이 정해지는 표현들이 많아져서 아무리 사전들을 뒤져가며 읽어도 어휘력이 늘지 않아 답답했다. 지면 외 다른 곳(에버노트나 아이폰메모앱 등..)에 표현들을 정리해두면서 모르는 표현을 마주칠때 예전에 적어둔 것들을 찾아보면 좀 도움이 될 것 같았는데, 그렇게 하자니 동선이 너무 복잡해졌다. 아카이브에서 찾고, 있으면 기록하고, 없으면 사전찾고, 다시 아카이브 열어서 추가하고, 아카이브에 있어도 뜻이 명확하지 않으면 다시 사전 열고... 이미 읽느라 진이 다 빠져서 표현들을 따로 정리할 여력이 없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가 학기 중반께에 단어의 수렁에 빠진 나를 구해준 앱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Universal Dictionary - Dict Box"(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grandsons.dictsharp&hl=en, /안드로이드는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grandsons.dictsharp&hl=en_US)라는 앱이다. 여러 종류의 영영/영독/영한/독독/국어사전을 다운받아서 오프라인으로 한꺼번에 검색할 수 있고(유로구매를 해야 영어 외의 사전들이 제공되는 점은 아쉽다), 구글 이미지 검색에 위키피디아, 윅셔너리, 영어 어원사전까지 제공해주는데, 어떤 단어를 몇 번 찾았는지 카운트해주는 기능과 폴더를 만들어서 찾은 단어들을 저장하는 기능, 히스토리를 텍스트로 익스포트하는 기능, 그리고 푸시 알림 기능도 제공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백미는 바로 표제어별로 메모를 남겨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 학기동안 내가 찾은 단어의 히스토리가 남아있는 데다가, 내가 읽은자료에서 긁어온 예문들을 계속 누적해서 적어놓을 수 있고, 그것들을 익스포트할 수 있기까지 하다니!! 그게 하나의 앱에서 모두 가능하다니..! 

 

그래서 이제는 전공 텍스트를 읽고나서 단어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 없이 그냥 읽기만 하면 됐다!(새로 익힌 표현들은 학기가 끝난 뒤에 익스포트해서 한꺼번에 정리했다 - 나중에 따로 포스팅할 예정) 한 번 마주친 표현을 또 마주치고 싶다는 기대감 속에서 전공 텍스트를 더 많이 읽었다. 그렇게 계속 읽어나갈수록 자주 쓰이는 표현들과 패턴들이 훨씬 잘 익혀졌고, 독해가 안되는 문장은 그냥 마음편하게 번역기를 돌려버렸다!(그리고 이것들도 따로 아카이빙을 했다) 

 

예전에는 한 페이지에 '주요 내용 표시/정리'와 '모르는 표현 관련 메모'가 한 데 얽혀있어서 몹시 난삽했는데, 언어공부 목적으로 필요한 메모들을 모두 앱에서 처리하니 지면이 훨씬 깔끔해졌다. 

 

이렇게 시험범위에 있는 텍스트를 전부 읽고나니 어휘력이 상당히 많이 늘었고, 무엇보다 예전보다 훨씬 어려운 텍스트를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학기 초에 골골대며 읽었던 텍스트를 기말시험 준비하면서 다시 읽었는데 훨씬 빠른 속도로 내용에 집중하면서 읽을 수 있었고, 이렇게 반 학기동안 수업내용을 낑낑대며 쫓아간 덕분에 결국 기말시험도 통과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아마 다음 학기도 꾸역꾸역 쫓아가게 되겠지.... 그래도 이제는 서점에 갈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기쁘다.

 

20200510

https://twitter.com/seoseojae/status/125930495298534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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