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나/번역 이야기

[번역 이야기] 27. 나쁜 번역 하는 법을 배워보자! ③ (작품성을 중심으로)

서서재 2021. 7. 2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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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야기] 26. 나쁜 번역 하는 법을 배워보자! ② (가독성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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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트는 『영미영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 창비, 2005)에서 나쁜 번역에 관해 묘사하고 있는 문장들을 주제별로 모아 정리하고 있습니다.

 

 

좋은 번역을 할 줄 알려면 나쁜 번역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겠죠? 이전 포스트에 이어, 이번에도 나쁜 번역 하는 법을 열심히 배워봅시다! 이번에는 작품성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줄거리만 파악할 수 있으면 일단 된 거라고 생각한다!

 

디테일하고 정확한 의미 전달이나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 구사보다 전체적인 줄거리를 전달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줄거리를 파악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일부 장에서는 오역이 별로 없다가도 어떤 장에서는 1면당 3~4개나 되는 많은 오역이 발견되어 신뢰성이 별로 높지 않다. (79) 줄거리를 전달하는 데 별 무리가 없으나 정확성에서는 많이 떨어진다. (80) 전체적인 줄거리를 파악할 수는 있지만, 원문이 복잡하거나 추상적인 감정표현이 나오는 대목은 예외없이 오역과 부실한 번역이 많다. (102) 최초의 번역본인 양병탁 역 을유문화사본은 줄거리를 파악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으나 생경한 해양용어를 포함한 어색한 표현이 많아 가독성이 낮고, 부정확하고 부적절한 번역도 적지 않다. (90)

 

나도 작가라고 생각하거나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내려놓고 원작자의 말을 옮겨 적는데에만 집중한다! 정확성과 가독성만 충족하면 다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줄거리를 전달하기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원작의 작품성을 충분하게 살리는 데에 크게 미흡했다. (117) 상당히 빈번한 오역에도 불구하고 중앙출판사본은 전반적으로 줄거리를 파악하기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작의 심층적 이해에 필수적인 분위기나 톤에 대한 고려, 적절한 문체의 선택과 일관성의 유지, 원문의 아이러니, 페이소스 혹은 뉘앙스에 대한 주의 등에서 수준 이하의 미흡함을 드러내고 있다. (93) 줄거리나 사건의 진행,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 등을 이해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고 판단하나, 그렇다고 이 번역이 원작의 작품성까지 재현한다고는 볼 수 없다. (126) 문장의 자연스러움이나 오역의 빈도에서는 정인섭보다 일정하게 낫다고 할 수 있으나 원작 이해에 분명하게 더 가까이 갔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190) 오국근의 번역은 가독성이 어느정도 있는 편이라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102)

 

 

캐릭터와 대화를 묘사하는 데에 큰 공을 들이지 않는다!

 

인물의 성격이나 특징, 심리를 정확히 표현하지 않고 인물의 고유한 말씨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다음 번역은 남편과 별거하고 있는 터체트 부인의 성격을 왜곡하고 있다. (108) 가정법 문장들이 제대로 번역되지 못해 이사벨과 오스몬드 사이의 미묘한 감정과 대립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다. (111) 원전의 작품성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이 번역본에서 허크와 기독교적 세계관의 관계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부족한 점은 특히 아쉽다. (120) 김욱동의 번역본에서 지적할 필요가 있는 대목은 허크의 말에서 눈에 띄게 비속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토껴버렸지요."(16면), "골로 가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18면), "미친 소리"(181면), "대갈통이 어떻게 된 바보 멍텅구리"(181)면, "기똥찼던"(183면) 등과 같이 번역본의 여러곳에서 발견되는 허크의 말투는 번역자가 의도적으로 비속어를 사용한 경우인데, 이런 비속어들의 사용은 허크의 교육수준을 고려한 번역이기는 하지만 '사회적 예법'과는 다른 차원의 인간적 품격 혹은 순수성을 유지하는 허크의 전체적인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과도한 표현이라 판단된다. (123) 사회적 지위 · 연령 · 나이에 따라 각각 알맞은 어휘와 어투를 사용하는 데서 모든 번역본이 공통적으로 취약한 면을 보였다. (347) 특히 백치인 벤지의 독특한 언어 사용이나 의도적으로 반복 사용되는 어휘나 표현들, 생략이 많고 비문법적인 구두점의 사용 등 원작의 특성을 충분하게 살려 번역하지 못한 점이 공통으로 드러났다. (177) 비교적 무난한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톤을 고려하지 않은 끝부분("... 있을 따름이었다") 때문에 문장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 부정적 어감을 내포한 "... 있을 따름이었다"라는 번역문의 술부는 더블룬을 응시하는 에이협의 시선에 깃들어 있는 집념과 강렬한 염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101)

 

인물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지 않고 대화문을 옮긴다!

이 대목은 허버트가 장모가 될 뻔한 콤슨 부인에게 하는 말이므로 경어체가 되어야 한다. (183)

 

인물의 호칭을 임의적으로 선택해 번역한다!

등장인물의 호칭에서 빚어지는 혼란은 자못 심각하다. 벤지의 어머니인 콤슨 부인이 서른세살의 벤지를 "baby"라고 거듭 부르는데, 이것을 '애기' 정도로 통일해서 번역해야 원작의 반복효과를 살릴 수 있다. 그 점에서 "너 저 애 덧신도 없이", "저 어린 것을 데리구서 말야", "그래 저런 사람을 어린애라고 부르시는군요" 등 "baby"의 번역에 일관성이 없다. 또 벤지 아닌 미스 퀜틴을 가리키는 대명사 "she"를 "그 애긴 저 아래 집에서"처럼 '애기'라고 번역하고 있어 혼란이 가중된다. (182)

 

대명사가 가리키는 사람을 혼동한다!

4장의 경우에 대명사를 부정확하게 지칭하여 혼란을 초래한 경우가 두드러진다. 가령 "할멈은 그 사람이 하란 대로 하는 게 좋아요"에서 "그 사람"은 아들을 지칭하므로 '그애'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다. "그 계짐앤 제가 열쇠를 가지고 다니는 거야?"에서 여기서의 "she"는 퀜틴이 아닌 콤슨 부인을 가리킨다. 

 

작가의 문체가 가진 특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간결한 문체를 길게 늘여서 번역해본다!

간결하고 적실한 호손 문장의 묘미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우리말 역어에 군더더기가 없어야 하는데, 대다수 역자들이 이런저런 설명적 어구를 덧붙임으로써 원문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55) 김수영 역본은 (...) 자기만의 독특한 문장구조를 가지고 있어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원문의 뜻을 전달하려고 문장을 풀어쓰는 과정에서 군더더기가 붙고 중복과 실수가 자주 나와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점 등을 지적할 수 있겠다. (56)

 

장황한 문체를 간결하게 끊어서 번역해본다!

문장을 옮기는 데서는 길게 이어지는 구어체 문장을 짧게 끊어 번역하여 읽기 편하게 만드는 경우들이 종종 눈에 띄는데, 줄줄 이어가며 말을 하는 홀든의 말투를 좀더 살려내려는 고심이 아쉬운 편이다. (238)

 

간접화법과 직접화법의 차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문체 면에서 간접화법을 직접화법으로 번역하고 있어,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세밀한 의미를 충실하게 살린 번역본으로 볼 수는 없다. (291)

 

작가가 의미를 담아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내멋대로 자유롭게 변주하여 번역한다!

등장인물의 호칭에서 빚어지는 혼란은 자못 심각하다. 벤지의 어머니인 콤슨 부인이 서른세살의 벤지를 "baby"라고 거듭 부르는데, 이것을 '애기' 정도로 통일해서 번역해야 원작의 반복효과를 살릴 수 있다. 그 점에서 "너 저 애 덧신도 없이", "저 어린 것을 데리구서 말야", "그래 저런 사람을 어린애라고 부르시는군요" 등 "baby"의 번역에 일관성이 없다. 또 벤지 아닌 미스 퀜틴을 가리키는 대명사 "she"를 "그 애긴 저 아래 집에서"처럼 '애기'라고 번역하고 있어 혼란이 가중된다. (182) 작품 전체를 놓고 일관된 역어를 선택하여 번역해야 할 어휘들에 대해 그때그때 다른 말을 사용한 경우도 아쉽게 느껴진다. (196)

 

★ 이렇게 번역하면 좋은 번역이 되어버린다!

가령 1장 첫 문단의 문장이 원문으로 7줄 이상인데, 이를 자르지 않고 그대로 번역함으로써 엘리어트의 길고 장중한 문체를 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372) 조이스의 다양한 서술체를 배려해가며 이에 보조를 맞추어 번역하려는 시도 역시 이 번역본의 강점이다. 가령 다분히 문학적인 이미지를 요하는 시적인 문장이나 언어의 리듬을 통한 음악적인 언어, 다시 말해 언어를 통해서 시각적 · 청각적 미학을 창출하려는 작가의 발상을 감지하고 이것에 호응하여 번역하고자 하는 노력을 볼 수 있다. (435) 연극답게 극적인 상황에 맞는 어투와 문체를 사용했으며, 완급과 고저를 조절하는 문장으로 각 장면의 상황을 적절하게 전달했다. 또한 운문으로 되어 있는 원문을 산문으로 번역했으되 적당한 리듬감을 살리려고 애쓴 흔적도 보인다. (512) 원작 문체의 특성을 살리려는 노력이 이 번역본의 가장 빛나는 대목이다. 이런 성취를 가능케 한 요인은 역자가 번역의 경험이 많다는 사실 외에도 당대 최고급의 영문학자로서 호손의 정교한 문장과 빼어난 심리묘사에 대해 최고의 존경심을 갖고 매우 진지한 자세로 번역에 임했기 때문인 듯하다. (58) 원문을 정확하고 충실하게 옮기면서 동시에 호손의 문체적 특성까지 고려하는 역자의 노력이 때로는 어색한 어법과 표현을 낳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뜻깊은 성과를 거두었다. (59)

 

 

비유와 은유, 상징, 암시 등을 대충 평범하게 처리한다!

 

원문의 은유가 번역에서 무시되어 그 맛이 사라진 경우도 있다. (113) 모리 아저씨의 알코올중독을 암시하는 대목의 번역은 미흡하다. (197) "~~"는 원문의 풍성한 묘사적 표현을 살리지 못하여 무미건조하다. 요컨대 가능한 한 비유법은 비유법으로 옮길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07)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나 작품 이해에 긴요한 전문지식을
먼저 공부하지 않고 바로 번역에 들어간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현대와는 매우 다른 역사적 배경에서 탄생한 중세작품이기 때문에 이 시대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다면 현대어에서는 맞게 보이는 번역이라도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가령 'condition' 'estate' 'degree' 등 한국의 역사나 현대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중세의 신분관계 등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나올 때, 그 원문의 맥락과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번역했는지를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247) 번역 수준 자체를 따지자면 중세영문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아닌 사람의 번역본치고는 비교적 믿을 만하지만, 원문의 역사적 · 문화적 · 종교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의 번역에서는 오역이 상당수 발견되었다. (248) 해양소설에서 이같은 전문용어의 오역은 역본의 신뢰성에 큰 흠을 남긴다. (404)

 

 

마지막으로...
제목을 잘못 붙인다!
The Sound and the Fury라는 원제를 국내 번역본들은 모두 '음향과 분노'로 옮기고 있으나, 적절한 선택은 아니겠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5막 5장에 나오는 맥베스의 유명한 독백 중 "full of sound and fury"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이 제목을 우리말로 옮기기란 쉽지 않다. 'sound'는 주요 인물이자 정신지체자인 벤지의 신음소리를 주로 연상시키지만, 여러 인물들이 내는 갖가지 목소리를 지칭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냥 '소리'로 옮기는 편이 낫겠다. (179)